한 여인을 20년간 기다린 순애보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58) #15. 동대문시장 ⑤

등록 2013.10.06 14:15수정 2013.10.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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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정네가 병중인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지고 피난가다(1950. 9.). ⓒ NARA, 눈빛출판사


인천

준기의 인천생활은 평온했다. 준기가 인천 송현병원 사무장으로 온 뒤 황재웅은 환자 진료에만 전담하고 나머지 병원의 일은 그에게 모두 맡겼다. 그러자 송현병원은 점차 환자가 늘어났다. 그와 함께 준기의 보수도 올라갔다. 준기는 숙직실에서 지내다가 곧 병원 가까운 곳에 전셋집을 얻었다.


그 사이 준기는 아내와 호적정리도 했다. 아내 쪽에서 먼저 합의이혼을 요구했다. 그는 딸 영옥이를 친정에 맡긴 채 재혼을 하는 모양이었다. 준기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준기는 아내의 재혼 후에도  매달 봉급을 받으면 곧장 영옥의 양육비로 일정액을 처가로 보냈다. 아무튼 영옥은 자기 자식이 아닌가.

준기는 병원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곧장 방사선 기사자격증도 땄다. 그러자 병원장은 준기의 월급을 더 올려주었다. 송현병원은 방사선과를 새로 증설하는 등, 날로 번창해 갔다. 인천과 서울은 한 시간 거리인지라 준기는 주말이면 이따금 서울로 와 순희를 추적했다.

준기는 여러 차례 발품을 판 탓으로 원서동에 오래 산 한 할머니를 통해 순희네 이야기도 들었다. 9·28 수복 후 곧 순희 아버지 최두칠은 한 청년단에게 끌려간 며칠 뒤 가족들도 한밤중에 종적을 감췄다는 얘기를 할머니는 귓속말로 전했다. 그 할머니는 거기까지만 얘기한 뒤 입을 굳게 닫았다.

준기는 해마다 8월 15일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서울 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으로 갔다. 그 새 서울에는 전찻길도 사라지고, 원래 덕수궁 담도 헐리고 새 담으로 단장되었다. 준기는 해마다 8월 15일이 다가오면, 또 마음이 설레고 그날이면 어김없이 준기의 발길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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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한문(2013. 6. 26.). ⓒ 박도


문창배 기자


그날은 1973년 8월 15일로, 준기가 순희 누이를 만나고자 1953년부터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을 찾은 지 만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준기는 이른 아침부터 서울 갈 차비를 했다. 준기는 예년처럼 동인천 역에서 경인선 열차를 타고 서울 역에 도착한 뒤 덕수궁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경축 광복절 28주년'이라는 기념아치가 서 있었다. 11시 50분, 김준기가 대한문에 이르자 한 사람이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준기는 깜짝 놀랐다.

"실례했습니다. 김준기씨 맞죠?"
"네, 기렇습네다."
"저는 대한신문 문창배 기자입니다. 한 독자의 제보에 따르면, 김준기씨는 한국전쟁 휴전 후 해마다 8월 15일 정오면 이곳에서 한 여인을 기다린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올해가 20년째로 해마다 빠짐없이 찾아오신 게 맞습니까?"
"기렇습네다만…."
"좋은 사진은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치 않아야 하기에 결례를 했습니다."
"아, 네."

문 기자는 카메라를 내린 채 고개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다.

"올해도 우선 그분을 기다려 보신 뒤 만나든, 못 만나시든, 저랑 인터뷰를 부탁드립니다."
"뭐 신문에 날 만큼 대단한 얘기가 아닐 거야요."
"아닙니다. 김준기씨의 사연은 아주 흥미롭고도 가슴 아픈, 우리 겨레의 비원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한결같이 해마다 8월 15일에 이 대한문을 지키는 김준기씨의 집념도 아름답고요."
"길쎄요. …."

문창배 기자는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대한문 앞의 준기를 향해 카메라 앵글을 잡은 채 대기했다. 그날도 준기는 예년처럼 대한문 현판 바로 아래에서 순희 누이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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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에 담배와 껌을 파는 소년(부산, 1951. 1. 8.). ⓒ NARA, 눈빛출판사


좀 더 기다려 보가시오

12시 정각, 준기는 예년과 같이 떨리는 마음으로 손목 시계을 내려다보고는 언저리를 둘러봤다. 그 순간 기자는 플래시를 또 터트렸다. 그날도 순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 1시가 지났다.

"올해도 그분은 나타나지 않나 봅니다."
"길쎄, 좀 더 기다려 보가시오. 대체로 여자들은 행동이 굼뜹네다. 기래서 해마다 최소한 두 시간은 기대렛디요."
"두 시간씩이나…."
"기럼요, 어느 해는 날이 아주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리다가 간 적도 있습네다."

준기는 대한문 현판 밑에서 조금 떠난 매표쇼 언저리에서 순희를 마냥 기다렸다.

"그래서 덕수궁 수위도, 매표원 아가씨도, 김준기씨를 기억하고 저희 신문사로 제보했나 봅니다."
"아, 기랬구만요. 내레 조금 더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디 가 점심을 드시고 오시라요."
"아닙니다. 그동안 그분이 나타나면 특종을 놓칩니다. 내일 아침신문에 특종을 터트리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요. 그리고 김준기 씨의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는 것도 제 취재입니다."
"아, 기렇습네까."

문 기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자 문 기자가 준기에게로 다시 다가왔다. 

"아직도 더 기다리시겠습니까?"
"오늘은 기자 양반도 애꿎게 기다리는데 그만 돼시오. 우선 어디 가서 요기부터 합세다."

준기는 앞장서서 문 기자를 덕수궁 옆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자장면을 먹은 뒤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왔다.

"기왕이면 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대로 갈까요."
"돟습네다. 이 더운 날 등나무 아래서 분수를 바라보면 시원하디요."

그들은 석조전 쪽으로 간 뒤 분수대 옆 등나무 밑 돌 의자에 앉았다. 문 기자는 취재수첩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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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앞 분수대(2013. 6. 26.) ⓒ 박도


미생지신

다음날 아침 대한신문 사회면 머리기사에 '한 여인을 20년간 기다린 순애보 - 현대판 미생지신'이라는 제목에 부제로 '해마다 8월 15일이면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키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라는 기사가 나갔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중국 춘추시대에 미생이라는 사나이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여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신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 통의 편지가 병원으로 날아 왔다. 전화도 여러 통이 걸려왔다. 하지만 최순희의 소식을 전해주는 편지와 전화는 단 한 통도 없었다. 준기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밤새 울었다는 사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여성 등으로,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건 이는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그 편지 가운데는 기사 내용을 청혼으로 잘못 알고, 준기와 결혼하고 싶다는 사연도 여러 통 있었다. 심지어 어떤 독자는 일부러 인천 병원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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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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