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경지로 소를 잡는 어느 백정 이야기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21] 件(건)

등록 2013.08.23 18:58수정 2013.09.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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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件 건(件, jian)은 사람(人)과 소(牛)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소를 부위별로 하나하나 나누어 ‘분해하다’는 의미에서 점차 ‘나누어진 조각, 부품, 물건’ 등을 나타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件, jian)은 사람(人)과 소(牛)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커다란 소를 부위별로 하나하나 나누어 ‘분해하다’는 의미에서 점차 ‘나누어진 조각, 부품, 물건’ 등을 나타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漢典


중국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1978년 개혁개방 당시만 하더라도 '세 가지의 소중한 물건(三大件, sān dà jiàn)'은 시계, 자전거, 재봉틀이었다. 개혁 개방 이후 컬러TV, 냉장고, 세탁기로 바뀌었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3M'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마이 카, 마이 홈, 마이 폰으로 변했다.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과 급성장하는 중국인의 구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일곱 가지 물건(开门七件事, kāiménqījiànshì)으로 땔감, 쌀, 기름, 소금, 장, 식초, 차(茶)를 꼽았으며, 1980년대까지도 이 물품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격을 관리하였다. 

물건이나 사건을 나타내는 건(件, jiàn)은 사람(人)과 소(牛)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소 곁에 선 사람은 아마 소 잡는 일을 담당했던 백정(白丁)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소를 부위별로 하나하나 나누어 '분해하다'는 의미에서 점차 그렇게 '나누어진 조각, 부품, 물건' 등을 나타내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에 소개된 최고의 백정, 포정(庖丁)이야기는 비록 도살을 소재로 하고 있긴 하지만,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어떻게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문혜군(文惠君)이 포정에게 소를 잡게 하는데 그 솜씨가 정말 기가 막히는, 예술의 경지 자체였다. 포정의 칼이 소 몸의 결을 따라 움직이는데 동작은 우아하여 춤을 추는 것 같고, 소리는 사각사각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소는 도의 경지에 이른 칼날에 분해되고도 자신이 죽은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포정의 이 놀라운 솜씨에서 나온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말은 생활의 달인들이 보여주는 놀랍고 신기한 기술을 이를 때 사용된다. 

포정은 소 몸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이미 마음으로 꿰뚫고 있기 때문에 칼날이 뼈를 건드리는 법이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서 19년 동안 오직 한 자루의 칼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는데도 마치 숫돌에서 막 칼을 간 것처럼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고 한다.

중국어는 사물을 셀 때 단위를 나타내는 말인 양사(量詞)가 발달된 것이 특징인데 '件'은 옷, 사건, 선물 등을 세는 단위로도 널리 쓰인다. '일지매(一枝梅)'는 청나라 초 소설 <환희원가(歡喜冤家)>에 나오는 의적이다. 일지매가 마치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처럼 불리지만, 사실은 재물을 훔치고 남기고 간 '매화 한 가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중국어는 어떤 사물을 바로 지칭하지 않고 수사와 양사를 앞에 붙여서 쓰는데 일지매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벌의 옷을 '一件衣服'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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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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