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입은 사람들이 무서워... 가슴이 막 뛰고"

[강정 평화마음 동화⑧] 작멜왓 먹돌처럼 강정도 사라지면

등록 2013.09.16 13:38수정 2013.11.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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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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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수


세상이란 내가 모르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곳일까? 나는 침대가 아니라 바다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물 속에서 듣는 바깥세상의 소리. 선아 누나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는 물결과 해초 사이에 누운 내 가슴으로 고였다가 스며들다가 흘러갔다.  


"고모, 학교에 제주 출신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고향을 싫어하신덴."
"사람마다 마음이 달르주(다르지)."
"풀지 못할 숙제에 빠지는 것 같아서 잘 안 오신덴…."
"풀지 못할 숙제…. 싫은 거이 아니라 하영 애절하신 거 아니?"
"게메(그러게). 그 말씀 하실 때 그분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아팠수다."
"에휴~ 누게가(누가) 고향 질을 막암신가(길을 막는가)?"

고향이 싫을 수도 있나? 애절하다는 건 무얼까? 내가 내쉰 숨도 꽃빛이 되던 벚꽃 터널이 떠올랐다. 외삼촌을 만나러 갈 때, 엄마가 차에서 내려 걸어가자 하신 벚나무 꽃그늘은 아주 길었다.

고개를 들면 꽃들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안 보면, 내 머리 위로 꽃잎을 하나둘 떨어뜨렸다. 나도 모른 척했다. 꽃들이 소근소근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길에서는 자꾸 웃음이 났다. "우리 상규 얼굴이 꽃이 됐구나" 하는 엄마 얼굴도 연분홍으로 환했다. 외삼촌은 그길 끝에 있는 대학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고모, 강정은 어떠꽈?"
"빗창 들고 호랭이 막아서는 형국이지."(빗창 : 전복 따는 도구)
"결국 들어오고 마는 거?"
"불법공사를 해도 공사 단속은 안 하고 경찰들이 지켜 서서 무조건 주민들만 잡아간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 아닌가."
"해군기지 완공되면 고모는 어떻게 할 거?"
"그 생각만 하면 밭에 검절매래(김매러) 간다, 답답해서…. 군인들 들어오고 유흥가 되는 동네에서 애들 키우고 못 살켜. 완공되기 전에 떠나야지 마을 부서지는 꼴 지켜볼 자신도 없다."

마을을 떠난다고?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갈 뻔했다. 엄마가 저런 생각 하는 줄 몰랐다. 마을에서 쫓겨나는 사람에 우리 가족도 포함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목이 꽉 메었다. 베개에 엎드려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고모, 서울에서 제주 애들끼리 만나면 다들 걱정햄져. 미군부대 들어오고 해병대, 공군기지 들어오면 제주는 어쩌냐고."
"선아야, 나는 여기 못 살켜. 군복 입은 사람들이 무서워. 가슴이 막 뛰고이…."
"고모는 옛날에도 그랬는데 어른이 되어도 똑같네."

엄마 마음 속, 진숙이라는 아이


"몽케지 말앙 혼저 가라게!(꾸물대지 말고 빨리 가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용두암에서 들었던 그 고함이 나는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 생각만 하면 몸에 뱀이 슥 기어가는 느낌이 들어.

나는 여름방학이 되면 탑바리 사는 이모 댁에서 며칠씩 놀았어. 어멍 사촌언니인 이모 댁에는 언니 둘과, 오빠, 동생까지 있어서 하루해가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놀았지. 탑동 해안이 우리 놀이터였다. 멱 감다 지치면 작멜왓 검은 자갈 들어 올려 보말이나 게를 잡고, 오빠들은 팔 길이만 한 대나무 낚시로 보들락을 낚아 주전자에 담곤 했어.   

작멜왓이 뭐냐고?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인 탑동 놀이공원이 옛날에는 둥근 먹돌 덮인 해안이었어. 먹돌을 작멜이라고도 하고 작지라고도 핸. 먹돌밭이니 작멜왓이지.

용두암도 우리가 멱 감고 노는 놀이터였어. 그때는 수영복 같은 건 아예 없었고 사내아이건 여자아이건 발가벗고 스스럼없이 멱을 감았거든. 바당(바다)과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놀았지. 나에게는 세상이 아직 천국과 같은 때였다.

그날도 그렇게 놀고 있었어. 용두암 빌레에 군인 두 명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더라. 그 중 한 아저씨가 오빠를 부르더니 과자를 한 봉지 줘서 우리는 신이 났지.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른 한 명이 나를 손짓해 부르는 거야. 또 과자를 주는 줄 알고 좋아서 달려갔어.

그런데 갑자기 나를 끌어당겨 몸을 만지는 거야. 옆에 군인이 성을 버럭 내면서 "하지 마. 경허지(그러지) 마라!"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얼른 놔줬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 내가 아주 나쁜 일을 당한 건 알겠는데, 무섭고,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꼼짝 못 하고 서있었지. 성난 군인이 나한테도 고함을 쳤어.

"몽케지 말앙 혼저 가라게!"   

나는 빌레를 뛰어 내려와서 그 다음에는 집으로 바로 왔는지 더 놀았는지 기억도 안 나.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도 기억이 안 나. 내가 나쁜 일 당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어. 나쁜 건 그 군인인데, 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 거야. 지금 아이들 같으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벌거벗고 멱 감던 천진무구했던 나는 그날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어. 내 마음에 이어져 있던 먼 바다의 수평선이 뚝 끊어졌지. 내 몸에 닿던 나쁜 손길과 그 군인의 표정은 너무 또렷해서 사라지지가 않더라. 난 말수가 적고 우울한 아이가 됐지. 여고 졸업 후에 친구들이 서울로 대학에 갈 때도 난 제주 떠날 생각도 못 할 만큼 소심하게 자랐어.

선아야, 내가 부지런하다고 칭찬 받아온 이유가 '몽케지 말앙…'이라는 말을 안 들으려고 애써서 아닐까? 지금도 군복 입은 사람만 보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무서움이 가시면 분하고…. 종일 일손이 안 잡힐 때도 있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숨이 막혔다. 우리 엄마가 어릴 때 그런 몹쓸 짓을 당했다니…. 내 몸과 마음은 거미줄에 감긴 곤충처럼 되었다. 나와 똑같은 5학년 때 우리 엄마가 당한 일이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쓴풀 꽃 닮은 내 마음

언제 잠이 들었을까? 아침 일찍 선아 누나가 나를 깨웠다. 빈소에 가야 한다. 얼른 일어나 세수하고 밥을 먹었다. 어젯밤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꿈처럼 느껴졌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가슴이 여전히 아팠다.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택시를 불렀기 때문에 우리는 아파트 마당으로 내려와 차를 기다렸다.

"쓴풀 꽃이 다 있네. 참 오랜만에 본다."

엄마가 아파트 화단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 말씀하셨다. 누나가 물었다.

"어느 게 쓴풀이꽈?" 
"여기 이 보라색 꽃. 애월 집에는 흰 꽃이 피는데 이건 보라색이네."
"맛이 써서 쓴풀이꽈?"
"쓰지. 옛날에 조금 뜯어 맛봤다가 열 번 스무 번 물로 헹구느라고 혼났다."
"얼굴은 순하고 예쁜데 성질이 요망지구나(야무지구나)."

나는 쓴풀과 내 마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겉은 아무렇지 않지만 속마음은 쓰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복잡한 신시가지를 빠져나가니 장례식장까지 가는 길은 한가했다. 쌩쌩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거리도 하늘도 가로수도 어제와 똑같다. 달라진 건 내 마음뿐이다. 몇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바퀴처럼 돌았다.

'우리 가족이 강정에서 쫓겨난다. 우리 엄마 마음속에 어떤 가여운 아이가 들어 있다. 우리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그런 일을 만들었다. 아무도 그 사람들을 혼내지 않는다.'

고개를 숙였다. 내 두 손이 서로 꽉 붙들고 있었다. 이 손이 어른 손이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나는 벌써 그것을 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해볼 수는 있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처럼 내 마음 속 수평선을 끊어버리지는 않을 거야. 마을을 떠나 이사를 가야 한다면 그건 엄마와 상아 때문이지 나 때문은 아니야. 나는 어른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올 거야. 누나네 교수님처럼 되지도 않을 거야. 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마을 이장님이영 평화 지킴이 삼촌들이영 누나들이 마을을 지켜줄 테니까.'
#작멜왓 #벚꽃터널 #용두암 #강정 #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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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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