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열차에서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왼쪽에서 두 번째로 중절모를 벗고 있다).
눈빛출판사
이토는 코코후초프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서 내렸다. 이토는 러시아 군악대 앞에서 러시아기와 일장기에 경례를 한 뒤 각국 영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러시아 군악대의 연주 속에 이토와 코코후초프가 나란히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나카무라 제코(中村是公) 만철총재, 가와카미 토시히코(川上俊彬) 하얼빈 주재총영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 만철이사, 모리 야스지로(森泰二郞) 비서관, 무로타(室田) 귀족위원 등이 뒤따랐다.
그때 하얼빈 역 플랫폼 기둥에 달린 시계침은 막 9시 25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토는 각국 영사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일본거류민단 환영객 앞을 지났다. 그때 일본인 환영객들은 일장기를 흔들며 이토 일행의 하얼빈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뒤 러시아군 의장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러시아군 의장대 뒤편에 있던 안중근은 그 순간을 하늘이 준 기회로 알고, 가슴에 숨겨뒀던 브라우닝 권총을 뽑아들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안중근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 하늘에 감사하며 회심의 첫 발을 조준하여 쏘았다. 그때 안중근과 이토와 거리는 불과 열 발자국이었다.
첫 탄알이 이토의 팔을 뚫고 가슴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총소리가 주악 소리에 묻혀 그때까지 경비병들은 영문을 몰랐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안중근은 심호흡을 가다듬어 다시 정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