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설탕 뒤에 숨겨진 아프리카의 '눈물'

[김성호의 독서만세⑩] <설탕과 권력>

등록 2014.06.04 09:36수정 2020.12.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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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서 살던 집 거실에는 커다란 찬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늘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설탕으로 만들어진, 춤을 추는 신사와 숙녀 조각이 있었다. 그 조각 아래에 하얀 각설탕이 꽉 채워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이후에도 오랫동안 설탕이란 것에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나는 설탕을 그저 단맛이 나는 가루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먹는 것으로 조각을 만들고 하는지 그저 쓸데없다고만 생각했고, 왜 그런 조각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 당시의 내게 설탕이란 소금과 같은 하얀 가루였고 짠 맛이 나느냐 단 맛이 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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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권력 책 표지 ⓒ 지호

그러나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을 읽고 난 후 설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슈퍼마켓에 가면 언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감미료에서 인류의 역사와 맞물려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하얀 가루로 말이다.

책의 저자 시드니 민츠는 책 전반에 걸쳐 설탕을 통해 파생된 권력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그는 제 1장에서 사람들이 단맛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논하며 설탕의 소비가 점차 늘어나던 추세를 설명하고, 2장에서는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늘어나는 설탕 생산량의 증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곧 이어 3장에서는 설탕의 소비 증가를 통해 설탕이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바뀌어가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설탕의 소비가 사람들의 식생활과 문화생활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설탕과 설탕연구에 대한 제안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설탕의 '지위'가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설탕은 처음 왕족과 귀족의 호사품으로 장식용이나 약품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다 시대와 조건이 변함에 따라 점차 중산층의 일상적인 감미료로 쓰이게 되었고 결국에는 영국 국민 모두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식재료로 사용 되기까지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설탕, 호사품에서 필수품으로


열대 작물인 사탕수수의 수액을 원료로 생산되는 설탕은 고대 인도와 이슬람 지역 등지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미료로 사용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탕수수라는 작물 자체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 수수에서 수액을 채취해 설탕을 만드는 과정 역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근대 농장체제가 갖춰지기 이전에는 설탕이 대량으로 생산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 등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삼아 설탕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이래로 설탕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점차 그 영향력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넓혀가기 시작했다.

영국에 설탕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설탕이 일부 계층의 호사품이었을 때 설탕은 금과 같이 부를 상징하는 귀중한 상품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노동자들의 식탁에도 설탕이 오르게 되자 설탕은 더 이상 호사품이나 의약품이 아닌 모든 가정의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설탕은 계층에 상관없이 차에 넣어 단 맛을 내는 감미료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상류계층에서 가지던 상징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곧 노동자들은 설탕의 최대 수요자로 떠올랐고 국가는 이들의 필요에 따라 설탕을 공급하는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자유주의는 시장을 따라 자본을 이동시켰고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아, 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설탕을 유럽 본토로 보내며 설탕을 소비하는 거대한 체제를 구성했다.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사탕수수 농업에 동원된 아프리카 노예들은 짐승처럼 채찍을 맞아가며 일을 했고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대규모 설탕농장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인간의 삶에 설탕이 미친 영향

그렇게 생산된 설탕은 유럽으로 옮겨져 유럽인의 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주식이었던 감자와 오트밀은 식민지로부터 차와 초콜릿, 코코아 그리고 설탕이 들어오며 빵에 차를 먹는 형태로 바뀌었다.

영양공급을 위해서는 오트밀을 먹던 시절보다 못했으나 주부가 일을 나가는 산업사회에서는 빵이 보다 간편하기 때문에 이런 식습관의 대대적인 변화가 수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설탕은 전 세계의 식탁 위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설탕이 가져다 준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노예업자에게 짐승처럼 사냥당해 아메리카의 사탕수수농장에 팔려나간 탓에 아프리카는 그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에서는 대규모 농장경영으로 원주민이 생활의 기반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익이 남는 곳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는 자본주의는 결국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라는 양 대륙을 착취함으로써 유럽에 설탕의 소비라는 '달콤한'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다.

역사가 에릭 윌리엄스는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라고 말했다. 단 맛을 내는 흰 가루는 한 대륙의 많은 인간들을 노예로 전락시켰고 그들의 노역을 통해 유럽의 문명이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다국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규제와 노동환경을 이용해 더욱 큰 이득을 보고 있는 지금의 세태에서 설탕의 역사는 시사점을 지닌다.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역사에 녹아든 설탕의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설탕에 나름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가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아무생각 없이 지나쳤던 설탕 조각에 자본주의의 압력과 제국주의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설탕이라는 작은 소재로 유럽의 문명을 조명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의미 깊었다.
덧붙이는 글 <설탕과 권력>(시드니 민츠 지음, 김문호 옮김, 지호 펴냄, 1998년 11월, 384쪽, 14000원)

설탕과 권력

시드니 민츠 지음, 김문호 옮김,
지호, 1998


#설탕과 권력 #시드니 민츠 #김문호 #지호 #에릭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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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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