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중세 종교의 막강함

[김성호의 독서만세⑪] 시오노 나나미의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등록 2014.06.11 14:05수정 2020.12.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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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책 표지 ⓒ 문학동네


시오노 나나미의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로 역사소설 분야에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가 사람들의 망각 속에서 제 모습을 잃고 종교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기능하던 십자군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로마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이야기를 끝마친 작가가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에 중근동의 지도를 곁들여 무려 200여 년에 이르는 십자군전쟁의 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니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Deus lo vult"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와 중근동의 이슬람 세계 사이의 대결이라고 해도 좋을 십자군 전쟁은 역사 속 수많은 사건들이 그렇듯 사소한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책에 따르면 프랑스출신의 은자 피에르가 성지순례길에 나선 그리스도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에게 핍박받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여 성전을 촉구하였고 당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을 키우는데 골몰하고 있던 로마교회 측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십자군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Deus lo vult"라는 말로 십자군전쟁을 제안하였으며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사후세계에서 받게 될 형벌을 면제해주는 면벌부를 내리는 등 전쟁에 앞장섰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교황의 말 한 마디에 서유럽 각지에서 잘 무장한 기사와 가난한 농민, 아직 앳된 소년, 심지어는 노인과 여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해방시키려는 전쟁에 뛰어든 데는 신앙만큼이나 중세사회의 무지와 그에 기반을 둔 종교가 큰 몫을 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중세사회는 암흑기(Dark-age)라 불렸을 만큼 신앙을 근간으로 한 종교가 합리성에 기반을 둔 철학, 과학, 법률 등을 압도했던 시기였다. 글도 모르고 평생 마을을 떠나본 적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직자의 설교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었고 종교는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틀이었다. 그렇기에 중세 사람들에게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촉구하는 로마교회의 선전선동은 일종의 계시와도 같았을 것이다.

필연적인 실패와 위기의 극복


이러한 이유로 1차 십자군은 결의에 가득 차 있긴 했으나 군대경험이 전혀 없는 순례자들이 다수 참전하게 되었고 지휘계통과 병참개념 같은 기본적인 체제를 갖추지 않은 이들은 필연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십자군 역시 이전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지세와 기후에 대한 예비지식의 부족으로 이슬람교도와 싸우다 죽은 사람보다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할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사례들은 확고하게 무장된 정신전력의 중요성은 물론 물리적인 전력만큼이나 병참과 지휘계통의 정비, 지형과 기후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되리라 생각한다. 십자군의 사례 뿐 아니라 당대 최강을 자랑했던 나폴레옹의 군대가 러시아에서 패퇴한 것이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해군에 꺾인 일도 모두 이러한 문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차 십자군의 총사령관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나 3차 십자군의 영웅인 영국 왕 리처드처럼 위기 때마다 병사들에 앞서 솔선수범하여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십자군은 이슬람세력과 대등한 싸움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전쟁에 대한 당위성과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을 위한 전쟁을 몸소 수행한다는 확신이 이들로 하여금 일신의 안위를 잊고 적의 창칼 앞에 뛰어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십자군의 사례는 정신전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군에게도 중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건 우리의 정신이라는 유명한 말처럼 아무리 최고의 전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신념화된 정신전력 없이 승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11년 7월, 205쪽, 11800원)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문학동네, 2011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귀스타브 도레 #송태욱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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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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