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에도 안 잡히는 한강다리, 여깁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전거 여행①] 서울 한강 잠수교

등록 2014.09.19 20:47수정 2014.10.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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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포대교의 무지개 분수쇼는 밑에 있는 잠수교에서도 볼만하다.
반포대교의 무지개 분수쇼는 밑에 있는 잠수교에서도 볼만하다.김종성

한강을 자주 오가는 자전거족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강 다리는 단연 반포대교 밑 잠수교가 아닐까 싶다. 보행자를 위해 편안하고 넓은 인도가 있는 광진교도 있지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잠수교는 여타 한강 다리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서른 개가 넘을 정도로 많지만, 대부분 차량 위주의 교량으로 자전거나 도보로 건너는 데 불편함이 많다. 그런 점에서 잠수교는 차보다 사람을 대우하는 다리로 군계일학의 존재다. 이런 좋은 다리가 1976년 처음 지어질 땐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겨났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서빙고와 반포를 잇는 다리 잠수교는 한강 남단과 북단을 이어주는 자전거족들의 가교다. 더구나 잠수교는 "380개의 분사구에서 물이 날개처럼 뿜어져 나와 반포대교 위를 걸으면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거창한 홍보 문구의 반포대교를 머리 위에 이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 신 나게 뿜어져 나오는 무지개 분수대 물줄기가 이채롭다. 쉼터가 있는 잠수교 북단엔 분수대 덕택에 야경까지 멋있다. 자연스럽게 밤에도 자전거족이 모여든다. 이 반포대교 무지개 분수는 세계 기네스협회에 'The longest bridge fountain(가장 긴 교량 분수)'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가동 시간 (10월말까지 운영)
ㅇ 평일 - 12:00/20:00/21:00시
ㅇ 휴일 - 12:00/17:00/20:00/20:30/21:00/21:30분 (매회 15분 동안 가동)

오르막 내리막길이 있는 독특한 재미의 다리, 잠수교

 눈높이에서 찰랑거리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잠수교.
눈높이에서 찰랑거리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잠수교. 김종성

 반포대교보다 6년 앞서는 1976년에 지어진 잠수교의 당시 모습.
반포대교보다 6년 앞서는 1976년에 지어진 잠수교의 당시 모습. (서울시 <한강의 어제와 오늘>사진 중)

반포대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복층 교량으로 만들어준 잠수교는 말 그대로 비가 많이 내리면 '잠수(潛水)'하도록 다른 한강 다리들보다 훨씬 낮게 설계되어 있다. 한강 수위가 6.5m를 넘어서면 잠수교는 잠기게 되기 때문에 한강 수위가 5.5m를 넘어서면 보행자 통행이 차단되고, 6.2m를 넘어서면 차량도 통제된다. 그래서 '잠수교가 잠겨 통제되었다'라는 뉴스가 나오면 시민들은 서울에 큰 비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잠수교가 서울의 '호우 경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가 연상되어 정감이 간다. 한 여름 장마가 한창 때면 사라지지만, 다리 가운데 봉긋 올라간 아치 부분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어, 마치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애틋하기도 했다.


반포대교 밑에서 숨어있다시피 자리한 잠수교지만, 이 다리가 지어진 것은 오히려 반포대교보다 먼저다. 1976년에 잠수교가 건설되고 그 6년 뒤에 반포대교가 놓인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반포대교에 가려져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을 찍어도 나타나지 않는 잠수교는 그래서 당시 정부에게는 '안보교'로 통했다고 한다.

잠수교가 강물이 불어나면 잠기는 잠수교로 지어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그 가운데 홍수를 방지하려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높이를 낮게 함으로써 한강의 유속을 낮춰 홍수를 대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제방시설이 발달해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 한강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해 잠수교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비가 많이 올 때 수면 아래로 잠긴 잠수교가 한강의 유속을 감소 시킨다. 그래서 과거 잠수교에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떠내려 오는 물건이 걸리지 않도록 다리 난간이 없었단다 (위 흑백 사진 참조).

 잠수교 중간엔 이채롭게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나있다.
잠수교 중간엔 이채롭게도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나있다.김종성

한강 다리들 가운데는 전쟁 상황을 감안한 군사전략적 입장에서 설계된 경우가 많았다. 한강의 경관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던 다리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인데,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 결과다. 잠수교에도 군사적 목적도 감춰져 있다. 용산 미군부대와 남산-강남권을 연결하는 잠수교는 반포대교 덕에 항공 촬영을 해도 드러나지 않고, 폭격을 피할 수 있다.

잠수교는 이렇게 폭격을 피할 뿐 아니라 파괴 후 빨리 복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지어진 대표적인 다리다. 다리를 받치는 교각을 15m의 짧은 간격으로 두어 쉽게 무너지지 않게 지어졌고, 폭파되더라도 금방 복구되기 쉽게 설계되었다.

자전거 탄 시민에게 잠수교는 낮은 높이 말고도 다른 한강 다리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다리의 중간 지점에 아치 형태의 경사진 언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을 신나게 내달리며 다리를 건너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찰랑찰랑한 한강물이 눈높이로 마주보이는 풍경은, 조선시대 때 건축된 한강가의 옛 다리 살곶이 다리를 지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치 형태는 1986년 한강에 유람선이 다니게 되면서 가운데가 불룩하게 개조됐다. 한강을 오가는 유람선이나 보트 등의 선박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잠수교는 한강을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듯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다. 한강이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더 강다워지고, 강남북의 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이런 친인간적인 다리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야 하겠다.

"땡땡땡" 향수 부르는 풍경,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반포대교 북단 교각 밑, 철길·차길·인도가 지나는 요지에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이 있다.
반포대교 북단 교각 밑, 철길·차길·인도가 지나는 요지에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이 있다. 김종성

 역무원 두 분이 한팀으로 3교대 근무를 하는 언제나 분주한 서빙고 철도 건널목.
역무원 두 분이 한팀으로 3교대 근무를 하는 언제나 분주한 서빙고 철도 건널목.김종성

한강 야경의 정점을 찍는 무지개 분수도 좋지만, 잠수교 북단 언덕위에 서면 어디선가에서 "땡땡땡~" 향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련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소리를 따라 잠수교 위 반포대교를 향해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정말 도심 속 향수어린 풍경이 나타난다. 낡은 철로 위로 빨간 테두리를 한 길고 둔중한 차단봉이 서있는 '서빙고 북부 건널목'이다.

직원 두 분이 근무하는 유인 철도 건널목으로 서울에 몇 개 안 남은 귀한 건널목이다. 서빙고 북부 건널목은 한강가 자전거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자전거족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철도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동부이촌동에서 한남동·용산·이태원 방면으로 오가는 차량들과 시민들로 건널목이 늘 북적북적하다. 비슷한 위치에 지하차도가 있지만, 이 건널목을 이용하면 지하차도와 달리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오갈 수 있어서 자가용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곳이다.

건널목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잠깐 서 있은 지 몇 분 사이에 서울과 양평을 오가는 중앙선 전철과 ITX 춘천고속열차가 내달려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예의 "땡땡땡" 경보소리와 함께 차단봉이 내려오고 유니폼을 입은 역무원이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을 저지하는 등 풍경이 분주해진다. 건널목을 걸어서 지나가는 주민들과 역무원 아저씨가 서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어느 소읍의 풍경마냥 참 정답다.   

낡은 철로 옆에 작은 사무실이 붙어있는 소박한 건널목엔, 나이 지긋한 건널목 지킴이 아저씨 두 분이 한 팀으로 3교대로 근무한단다. 자정이 넘으면 전철도 안 다니는데 굳이 새벽에도 근무를 해야 하느냐는 내 우문에, 아저씨는 웃으시며 심야와 새벽에 시멘트, 화물 등을 실은 수송열차가 한낮만큼이나 자주 지나간다고 한다. 그 시간에도 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들이 있기 때문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3교대 근무를 하는 것이라고. 주말과 대체연휴가 붙어 있어 꽤 길었던 지난 추석연휴에도 꼬박꼬박 일하셨다고 한다.

내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도시는 이렇게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어서 가능했음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참, 수고가 많으시네요!"란 말로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대신했다. 다음번에 이 건널목에 들릴 땐 비타민 음료 하나 챙겨들고 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ㅇ 지난 9월 13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 '서울톡톡'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잠수교 #한강다리 #반포대교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무지개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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