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한 이발소 간판, 참 당황스럽네요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전거 여행②]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마실 여행

등록 2014.09.29 22:13수정 2014.10.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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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고 부드러운 강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마음을 토닥여 주는 두물머리.
잔잔하고 부드러운 강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마음을 토닥여 주는 두물머리.김종성

한강이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지만 번잡하고 퍽퍽한 도시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때 정작 떠오르는 곳은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다. 강물인 듯 강물 아닌 강물 같은 강,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변해버린 한강과 달리 두물머리엔 살아 있는 '강물의 빛과 운치'를 고요한 수변길 따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익숙한 명소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지겹거나 질리지가 않는 곳이 두물머리와 아담하고 정다운 소읍 양수리다.


그런 양수리에 '두물머리 물래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까지 생겼다. 이 길은 물 따라 길 따라 수변 산책로가 참 좋은 동네 양수리를 마실 여행 삼아 한 바퀴 돌아보는 약 7km의 정답고 운치 있는 길이다.

새로 길을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동네 길을 이어 붙인 것이라 더욱 좋다. 연꽃, 수련으로 풍성한 넓은 용늪, 매 1일과 6일에 열리는 오일장터, 소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양수리 시내, 강가에 자리한 양수리 생태환경공원,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 등을 지나간다.

물래길 끝엔 400살 먹은 노거수 느티나무가 살고 있는 두물머리가 자리하고 있다. '물래길'이라는 이름은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머리를 맞대며 만나는 두물머리의 '물'을 주제로 우리말의 '물'자와 한자의 '올래(來)'자를 합성해 만들어진 명칭이라고 한다.

그림 같은 용늪, 오일장터를 품은 소담한 동네 양수리

 지하가 아닌 야외 풍경속을 달리는 중앙선 전철은 여행하는 기분을 돋운다.
지하가 아닌 야외 풍경속을 달리는 중앙선 전철은 여행하는 기분을 돋운다.김종성

 용을 닮은 바위가 있었다는 넓고 아름다운 용늪.
용을 닮은 바위가 있었다는 넓고 아름다운 용늪.김종성

도시의 지하철과 달리 큰 창밖으로 다양한 야외 풍경을 보여주며 달리는 중앙선 전철을 타고 '두물머리 물래길'이 시작되는 양수역에 내렸다. 역 주변에 예쁜 카페와 식당, 자전거 가게가 즐비하고 동네에 활기가 느껴진다. 이게 다 명소가 된 두물머리 덕분이지 싶다. 양수역은 '두물머리 물래길'의 들머리이자, 남한강 자전거길이 지나가는 길목이며 자전거족의 쉼터이기도 하다.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난 내리막길 도로를 내려가면 나무 목책 산책로가 나있는 넓은 저수지가 보인다. 중앙선 전철을 타고 지나갈 때면 언제나 창밖으로 눈길을 끄는 연꽃이 군락을 이루어 아름다운 용늪이다. 이 늪은 두물머리 일대의 한 쪽 부분을 길게 차지하는 큰 늪이다. 지금은 늪 속에 잠긴 용을 닮은 바위에서 늪의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물고기와 개구리들이 살고 있음직한 푸르른 연잎이 어찌나 풍성한지 늪의 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늪 사이를 지나는 푹신한 나무 산책로를 걷다보면 나타나는 작은 쪽배 한척이 늪의 분위기를 더욱 한갓지고 여유롭게 해주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이라 그런지 나무 산책로 중간에 놓여 있는 벤치에 십 대의 연인 한 쌍이 사랑을 속삭이며 앉아 있었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첫 사랑이 떠오르기도 해 아련한 눈길로 힐끗 쳐다보았을 뿐인데 괜스레 쑥스러워 하는 어린 커플의 모습이 참 풋풋해 보였다.  

 발길을 붙잡는 양수리 강변의 정겨운 항아리 가게.
발길을 붙잡는 양수리 강변의 정겨운 항아리 가게.김종성

 성형수술한 시골 외갓집 사촌누나를 보는 듯 했던 양수리의 새간판들.
성형수술한 시골 외갓집 사촌누나를 보는 듯 했던 양수리의 새간판들. 김종성

용늪 길은 자연스레 양수리 한가운데 오일장터가 있는 번화가로 이어졌다. 오일장터로 들어서기 전 강변에 자리한 마당 넓은 항아리 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아파트가 흔한 도시에 살게 되면서부터 못 보게 돼서인지 항아리를 보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지고 발길이 머물게 된다.

가게 입구에서 기웃거리다 "항아리 구경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는 미술관 큐레이터마냥 항아리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강가에 길게 놓아둔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항아리들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자연스레 잘 어울렸다.

오일장터를 품고 있는 '양수리 시내'는 종점 방앗간, 금성 이발소 등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정다운 소읍 분위기 그대로다. 명소 두물머리가 가까이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작은 동네에 여러 대기업 편의점과 큰 마트들까지 들어섰다.

그런데 동네 가게의 간판들이 좀 이상하다. 가게 간판의 디자인과 글씨체 등이 깔끔하게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강원도 화천군, 경기도 연천군 등 다른 동네들처럼 지자체에서 가게 간판들을 무상으로 바꿔주었나 보다. 깨끗하고 말끔해서 좋긴 한데 뭐랄까, 시골에 사는 수수했던 외갓집 사촌 누나가 성형수술을 하고 친척들을 반겨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 1일과 6일엔 양수리 공영 주차장 자리에 오일장이 열린다. 가까운 양평 오일장(매 3일, 8일)처럼 큰 장터엔 외지인들도 많이 오는데, 소담한 동네에 어울리는 아담한 양수리 오일장터엔 동네 사람들이 며칠 만에 한 번씩 만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고 낮술도 한 잔 하는 사교의 장이다.

할아버지가 자전거 안장 뒤에 태우고 데리고 나온 귀여운 손주에게 사탕을 물려주는 노점상 할머니의 인자하고 주름진 미소, 새끼 고양이들을 파는 노점에 둘러앉은 고양이만큼이나 귀여운 아이들, 하늘을 가린 장터의 천막들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눈부시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 작지만 이런 장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양수리에 자꾸 가게 되지 싶다.   

물 따라 길 따라 양수리 생태공원, 두물머리 수변길

 운길산, 북한강 철교가 보이는 호젓한 양수리 환경생태공원.
운길산, 북한강 철교가 보이는 호젓한 양수리 환경생태공원.김종성

 동네 할아버지 뒤를 따라 갔다가 마주친 노거수 밤나무의 열매들.
동네 할아버지 뒤를 따라 갔다가 마주친 노거수 밤나무의 열매들. 김종성

양수리 오일장터 구경을 잘 하고 바로 옆 우체국 앞길을 따라 쭉 가면 갑자기 시야가 시원하게 열리면서 강변길과 함께 북한강 철교와 운길산 풍경이 나타난다. 옛 모습을 간직하고 물 위에 서 있는 북한강 철교는 자전거 탄 사람들이 강바람을 쐬며 오가고 있다. 남한강변의 산책길 겸용 자전거도로와 이어져 있어 동네 주민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양수리 환경생태공원이다.

색색의 예쁜 들꽃들과 오래된 밤나무, 굴참나무 등이 사는 공원 안의 울창한 숲, 뿌리를 물속에 내리고 물가에 사는 수양버들, 잔잔한 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강 철교와 양수교, 운길산··· 언제가도 호젓한 분위기의 양수리 환경생태공원은 물래길의 숨은 보물이다. 몇 년 전 여름,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공원 전망대 정자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리며 비 내리는 숲속공원의 아늑함을 체험했던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공원 산책길에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짐자전거를 탄 동네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뒷짐을 진 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왠지 끌려 몰래 따라가 보았다.

공원 안 깊은 곳에 할아버지처럼 늙은 노거수 밤나무가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다 익어 땅에 떨어진 밤을 주우러 산책삼아 오신 거였다. 농익어 쩍 벌어진 밤 가시들이 밤나무 주위로 널려 있었다. 동네에서 오래 같이 살아온 나무와 사람이 밤을 주고받는 친구처럼 보여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할아버지 뒤를 따라온 보람이 있었는지 통통한 밤톨 몇 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두물머리로 가는 풍광 좋고 걷기 좋은 수변길.
두물머리로 가는 풍광 좋고 걷기 좋은 수변길. 김종성

 두물머리 수변길을 걷다보면 세미원으로 건너갈 수 있는 이채로운 배다리가 나타난다.
두물머리 수변길을 걷다보면 세미원으로 건너갈 수 있는 이채로운 배다리가 나타난다. 양평군청 제공

다시 양수리 시내로 나와 오일장터 앞 도로를 건너면 두물머리로 가는 수변 산책로가 보인다. 양수리(兩水里)는 동네 이름답게 수변길이 많다. 수변길을 지나며 왜 강변길이라 부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마음을 풀어주는 부드럽고 순수한 물빛의 강이 발치 가까이에 흐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아름다운 물길만큼이나 수변길도 예쁘다. 물 따라 길 따라 난 그림 같은 풍경에 자꾸만 페달 질을 더디게 하는, 빨리 지나가면 갈수록 손해 보는 길이다.

특히나 이맘때의 초가을 녘엔 따갑기보단 따사롭게 물 위를 비추는 햇볕을 쬐며 달리는 기분은 산뜻하기만 하다. 물길과 수변길이 어우러진 보기 드문 길이다 보니, 문화부에서 만든 '두물머리길', 남양주시에서 만든 '다산길' 등이 서로 겹치면서 지나갈 정도다. 두물머리 가는 수변길은 도시나 도회지 인근에 조성한 '걷고 싶은 길'에서 흔히 마주하는 콘크리트나 우레탄 등으로 조성한 길이 아닌 마사토로 깔은 길이다.

자전거에서 절로 내려와 걷게 된다. 발바닥에 닿는 편안한 흙의 감촉이 좋고, 옆으로 강이 함께 흘러서 그런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길 곳곳에 서 있는 운치 있는 석등, 기와와 흙으로 만든 낮은 토담 너머로 초로의 아저씨가 탄 작은 어선이 지나가는 강변의 잔잔한 풍경이 걸음걸음을 더욱 유유자적하게 해주었다.

두물머리로 가는 오붓한 수변 산책로를 걷다보면 옛 전통 연못처럼 잘 꾸며놓은 '물과 꽃의 정원'이라는 세미원을 만난다. 재미있게도 물위를 건너 갈 수 있게 정원까지 흔들거리는 배다리가 놓여 있어 물 위를 걷는 듯해 이채로운 기분이 들게 해놓았다. 다리 양쪽에 오색 깃발로 화려하게 장식한 배다리는 조선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융건릉을 찾기 위해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의 옛 모습 그대로 양평군에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잘 꾸며놓아 보기도 좋지만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으로, 연꽃과 수련, 창포 등을 심은 6개의 연못을 거친 한강물은 중금속과 부유물이 많이 걸러진 뒤 팔당댐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세미원의 입장요금은 일반 4000원, 어린이·청소년 2000원이다. 양평군에서 문화해설(031-775-1834)도 진행하는데, 오전 10~12시와 오후 1~4시에 한다.

400살 먹은 도당 할아버지 나무가 사는 두물머리

 사람들의 쉼터인 정자수이자, 주민들의 숭배를 받는 성황목이기도 한 두물머리 느티나무.
사람들의 쉼터인 정자수이자, 주민들의 숭배를 받는 성황목이기도 한 두물머리 느티나무.김종성

수변길이 끝나는 곳이 바로 두물머리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라 불린다. '양수리'라는 지명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옛날엔 두물머리를 두머리라 불렀단다. 두물머리 물가에 400살이 넘었다는 장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어르신처럼 앉아 있다.

1972년 팔당댐이 생겨나면서 뿌리가 물에 잠겨 건강하지 않다는데도, 내 청춘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간을 기쁠 때나 슬플 때 찾아갈 적마다 마음을 토닥여주는 고마운 존재다. 두물머리 마을에는 원래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로 부르는 두 나무가 살고 있었으나 팔당댐 완공 이후 마을에 있었던 옛 나루터와 함께 도당할머니 나무도 그만 수몰되었다고 한다.

이 도당할아버지 느티나무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정자수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아오고 있는 성황목이기도 하다. 요즘에도 해마다 가을이면 이 나무에 제를 올리는 '도당제'가 양서면의 주최로 열린다. 올해는 10월 14일에 도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과거에는 2년에 한 번씩 무당과 화랭이(무악을 집안대대로 세습하는 남성악사를 일컫는 용어, 신라의 화랑(花郞)에서 유래)들이 와서 도당굿을 벌였으나, 을축년(1925년) 큰 장마로 마을이 심하게 훼손되자 이후로는 굿은 사라지고 제만 유지되어 왔다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도당제 덕인지 몰라도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함께 두물머리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과거 이들 느티나무는 강이 잘 보이는 언덕에 그늘을 만들어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떼꾼들이나 배를 타고 한양으로 가는 이들에게 표지판 구실을 했었다고 한다.

느티나무 주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떠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기온차가 큰 봄, 가을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난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해저물녘의 풍경은 어떨지 궁금해 땅거미가 질 때까지 두물머리에서 늦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새벽녘의 물안개만큼이나 몽환적으로 나타난 건, 황혼녘 수면에 반사된 부드럽고 긴 금빛 노을이었다.    

ㅇ 주요 자전거 여행길 : 중앙선 양수역 - 용늪 - 양수리 오일장터 – 양수리 환경생태공원 - 세미원 - 두물머리

 '두물머리 물래길' 따라, 양수리 마실 여행.
'두물머리 물래길' 따라, 양수리 마실 여행.양평군 안내지도

덧붙이는 글 지난 9월 21일에 다녀왔습니다.
#두물머리 물래길 #양수리 오일장 #양수리 생태환경공원 #세미원 #두물머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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