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대북정책? 애초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황 기자의 한반도 이슈]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비공개 논란

등록 2014.10.15 18:07수정 2018.03.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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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연합뉴스

"현 단계에서는 확인해 드릴 수 있는 사항은 없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5일 오전 통일부 정례브리핑.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사실과 정부가 제2차 고위급 접촉 날짜를 북한에 제의했다는 보도를 확인해달라는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답변을 10여 차례나 반복했다.

<조선일보>가 이 내용을 이날 1면 머리기사로 첫 보도한 뒤 통일부는 출입기자들에게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사실상 인정'이지만 정확한 회담 일정과 대표단 면면, 회담의제, 남북 어느 쪽이 먼저 제안했는지 등이 불투명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이 당 회의에서 "오늘 오전 10시에 판문점에서 남북 실무회담이 열린다고 한다"며 "서해 NLL(북방한계선), 전단살포 등의 의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언론이 정부는 물론 박지원 의원에게까지 '물을 먹은' 상황이 됐다.

통일부 "남북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문제, 그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박 부대변인에게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투명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회담이 열린 것에 대해서도 확인을 않는 것이 대통령이 얘기한 투명한 대북정책인가", "현 정부는 비밀회담이나 비선을 통한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가져왔고, 그렇게 원칙을 지켜온 것을 대북정책의 성과로 평가해왔다"고 따졌다.

박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우리가 실시간으로 확인해 드리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있는 문제라는 점을, 그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란다"고 답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그가 한 말중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다. '회담 상대방인 북한이 비공개를 원하고 있으며, 정부도 그에 합의했기 때문에 이미 보도가 나오고 있음에도 확인해 주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 회담이 끝난 뒤에야 이를 공식확인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회담 개최 사실을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 "(지난 7일) 서해상에서 함정 간 교전이 발생했고, 연천에서 총격이 발생하는 등 남북 관계 상황이 예민한 시점이고, 남북이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그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었다. 지난 2월 1차 남북 고위급 접촉때 북측은 비공개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에 반대해 결국 공개로 진행됐고, 북측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것까지도 공개했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한 접촉 제의도 북측의 답변이 나오기 전에 공개한 바 있다.


"군사회담, 북 요구 수용해 비공개 한다면 이전보다 유연해진 것"

이야기 나누는 북한 고위대표단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야기 나누는 북한 고위대표단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여기에는 '남북관계의 국제화'라는 기조가 깔려있었다. 남북관계가 '국제 외교 관계 수준' 의 투명성을 갖게 되는 것이 '남북관계의 정상화'라는 것이었다. 지난 9월 인천 아시안게임때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가 비용문제에 대해서도 '자국부담'이라는 국제관례를 우선했다가 응원단 참가가 무산됐었다.

하지만 보통의 국제관계에서도 일정한 비공개와 물밑접촉은 상식이다. 특히나 예민하고 변수가 많은 남북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국자들이 비공개로 만나는) '공식-비공개 회담'이나 (비선라인이 비공개로 나서는) '비공식-비공개 회담'이 물꼬를 트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남북관계를 가능한 투명하게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남북간에는 예민한 사항이 많고, 남남 갈등 요인과 북한도 공개되는 내용과 속내가 다른 사안들도 있다는 점에서 허심탄회한 논의를 통해 접점을 찾는 데에는 일정한 비공개가 유용할 수 있다"며 "이번 남북군사회담도 정부가 북한의 요청을 수용해서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라면, 과거 보다 유연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도, 미중 수교를 끌어낸 키신저의 중국 방문도 처음에는 비밀접촉으로 시작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재일동포 기업인 요시다 다케시와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 라인이 밑돌을 놨다. 미중 수교도 1971년 파키스탄을 방문중이던 헨리 키신저 미 백악관 안보담당특보가 갑작스러운 복통을 핑계로 휴식하겠다며 외부의 눈을 따돌린 뒤 파키스탄 대통령의 전용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간 것이 기초가 됐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북 물밑접촉 않는 게 자랑이냐"

여권 내에서도 이미 '투명한 대북정책'을 재고하라는 비판이 있어왔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문 하루 전인) 3일 NSC(국가안전보장회의)회의에서 황 총 정지국장 등의 청와대 방문 여부를 어떻게 얘기했기에 방문의사도 없는 사람한테 청와대 예방을 제안한 것이냐"라며 "대북 물밑접촉을 않는 것이 무슨 자랑이냐, 그래서 제가 남북 간 물밑접촉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도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나 현재 '비밀접촉'은 없다고 하는데 남북관계를 풀려면 비밀접촉이 있어야 한다"라며 "비밀접촉을 안 하는 걸 자랑인 양 얘기하는 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결국 남북관계 진행 상황의 전반을 그대로 공개하겠다는 이른바 '투명한 대북정책'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투명한 대북정책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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