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軍) 수산 부문의 공로자들을 노동당 청사로 불러 직접 표창을 수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육성으로 발표한 2015년 신년사에서 '남북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최고위급 회담은 정상회담을 의미한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었던 1994년이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던 2000년, 2007년에도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시사하지는 않았다. 올해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남다른 이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초에 연두회견을 한다. 올해 연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개선에 대한 기대담은 작년에 박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언급했을 때보다도 더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1월말에 연두연설(Staets of the Union)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환영할 것이지만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 사이버 테러 등에 대한 우려를 함께 표명할 것이다. 아니면 이러한 우려 때문에 아무런 언급을 안할 수도 있다. 이후 2월말부터 4월중순까지 키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훈련이 열린다. 남북관계 개선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1월말 이후부터 즐비하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육성 신년사 대신에 신문에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공동사설의 제목이 그 해 북한이 추구하는 핵심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육성으로 발표되었으므로 제목은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설과정에서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를 투쟁구호로 제시했다. 과거 공동사설을 발표했을 때의 제목과 같은 것이다. 북한이 2015년에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신년사에서 제시한 북한식 남북대화 프로세스 아울러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식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고위급접촉 → 부문별회담 → 최고위급 회담이라는 3단계이다. '고위급 접촉'이란 2014년 1월에 청와대 NSC와 북한 국방위원회 사이의 접촉을 말한다. 공식회담이 아니라 접촉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남측 단장은 김규현 NSC 사무차장이었고, 국방위원회 대표단 단장으로는 원동연 노동당 통전부 부부장이 맡았다. 청와대와 국방위원회 사이의 대화창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2014년에 남북장관급 회담의 격문제 때문에 회담이 결렬된 적이 있었다. 남북한은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격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어렵다. 북한은 내각에 통일부가 없기 때문에 엄격하게 볼 때 장관급 회담의 격을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기초적인 대화조차 못하는 상태에서 청와대와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서서 고위급 접촉을 하게 되었다.
남북 사이에서 격문제라는 유치한 논란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남북관계 수준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국방위원회가 접촉을 통해서 상호 관심사를 조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실제로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작년 고위급 접촉을 통해서 비방중상과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우려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다시 고위급접촉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부분별 회담이라는 각종 장관급 회담을 추진하고, 이러한 환경과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상세한 프로세스를 제안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지난 12월 29에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접촉을 제안한 것을 간접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통준위와 통일전선부의 접촉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방위원회의 고위급 접촉을 하자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다시 제안한 것이다. 물론 남한정부도 고위급접촉 재개를 이미 제안했다. 하지만 통일준비위원회가 제안한 대북접촉을 둘러싸고 남북한이 또 대화의 창구와 격을 가지고 다툴 소지가 발생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과 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했지만, 남북 사이의 무의미한 기싸움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신년사에서 제시한 두가지 근본문제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근본문제이다. 북한은 그동안 남북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근본문제를 제시해왔다. 근본문제에 대한 남한 정부의 대응태도를 보면서 대화의 속도를 조절했다. 또는 근본문제를 협상카드로 쓰기도 했다. 이번에는 '한미군사훈련중지', '체제존중과 제도통일 반대'를 근본문제로 제기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북한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대화의 조건과 시기를 조절하려할 것이다.
다른 한편 신년사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억제력과 선군정치를 계속할 것임을 강조했다. 비핵화나 평화체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북미관계는 지난해 영화 '더 인터뷰' 상영을 둘러싼 문제가 쏘니 해킹사건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갈등요소를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해킹을 북한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도 소니 해킹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는의견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소행을 언급해버렸고, 북한은 이에 대해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인종편견적인 욕설을 하는 등 북미관계는 악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핵과 미사일, 인권문제에 이어서 사이버 해킹문제가 북미관계를 악화시키는 4대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북한의 신년사에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국제적인 환경은 부정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북한 핵문제, 인권문제, 사이버 해킹문제와 별개로 추진해나갈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미국의 저질 상업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북한의 경직된 대미 접근법이 단기간에 급속하게 변화될 가능성도 없다.
북한이 악화시킨 '더 인터뷰' 사건미국의 할리우드가 현존하는 국가원수를 모욕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여론도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은 대응은 단순했다. 영화상영을 위협하고 사이버 해킹을 옹호하며 미국의 국가원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다. 북한이 할리우드의 천박한 상업주의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숭고한 가치로 대체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버렸다.
게다가 북한정부나 공식매체가 오바마 대통령을 원숭이(black monkey)나 잡종(cross breed)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미국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개념에 따라서 성차별, 인종차별을 비롯하여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는 용어를 객관적인 용어로 대체해왔다.
흑인(Black)보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 불법체류자(Illegal Immigrant) 보다는 이민서류가 없는 사람(Undocumented)로 바꿔 부른다. 성차별적인 용어가 있는 스튜어디스(stewardess)는 승무원(flight attendant)로 부르는 등 수많은 용어들이 새롭게 사용되어 오히려 이를 모를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될 지경이다.
북한이 미국의 정책에 항의할 때도 미국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효과가 크다. 이는 매우 단순한 원리이다. 하지만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북한은 공격적이고 비문명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스스로 국제여론에서 고립되는 길을 택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북한이 미국 시민사회에 대한 세련된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여력이 국제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체제의 최고존엄 옹호가 북한의 영토를 벗어나는 순간 국제사회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어버리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북한의 고립과 붕괴를 바라는 음모가들에게는 이것만큼 매력적인 사안은 없을 것이다.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남북정상의 의지는 표출되고 있으나 사실상 분단 70년을 맞이해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 모두 대화의 의지를 과시하는데서 머울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게다가 남한은 북한을 다루는데 서툴고, 북한은 미국을 다루는데 미숙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한미관계, 북미관계라는 삼각관계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제안을 하고, 결과가 나쁠 경우 북한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게 하더라도 국내정치적으로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미국의 국가원수에 대해서도 인종차별적인 막말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의 음모가들은 북한의 핵, 미사일, 인권, 사이버테러 문제가 확산되는 것이 북한을 구실로 해서 중국을 옭죄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익힌 학습효과 덕택에 남북관계 개선을 말로는 지지할 것이다. 실제로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남북, 알렉산더의 칼을 들어야 남북 정상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의지가 있다면 1월 초에 청와대와 국방위원회 사이에 고위급 접촉을 해야한다. 그리고 작년에 남북이 합의한 대로 한미군사훈련은 로키(low key)로 진행하고,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등을 실시해서 쌍방이 신뢰를 다져야 한다. 그렇게 만든 신뢰를 바탕으로 당국간 회담을 정례화 해나가는 수순이다.
남북 쌍방은 통일준비위원회와 북한의 통전부 사이의 대화이든, 통일부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사이의 회담이든, 통일준비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대화이든, 대화 창구에 연연해하는 소아병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국간 회담을 통해서 6.15 공동선언, 7.4 공동성명, 10.4 선언을 남북공동으로 기념하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이 온갖 요소들로 복잡하게 꼬여 있는 남북관계의 장애물들을 잘라내는 알렉산더 대왕의 칼이 될 것이다. 분단70년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이러한 조치들을 줄기차게 밀고 나갈 때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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