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이라며 딸내미가 채소며 곡물이며 혼합하여 옅은 죽을 끓여 먹입니다. 꼭 참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 받아먹듯 잘도 받아먹습니다.
김학현
벌써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도사가 되어 두 번째로 부임한 목회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가 백제의 문화가 숨 쉬는 고도 부여에 있었습니다. 부임한 지 이틀이 지나 첫 번째 주일(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예배를 준비했던 터라 전 성도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좀 들떠 있었죠.
들뜬 마음 가시지 않은 채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 밖에서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첫 대면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여성도 등에 예쁜 아이가 업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업혀야 할 정도로 어린아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끔찍이도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영(가명)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그 아이는 여전히 엄마 등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도, 그 다음 주일도... 참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아이의 나이가 네 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살이나 된 아이를 업어야만 하는 사연도 들었습니다.
아이 성장, 당연하다고요?... 아닙니다걸을 때가 되었는데도 수영이는 걷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앉은뱅이였던 것이지요. 엄마 등에 업혀야 어디든 갈 수 있는 소녀였던 겁니다. 아이는 해가 지나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수영이는 그러질 못한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엄마는 수영이를 업고 다닐 수밖에요. 오늘날 같으면 휠체어라도 이용했을 텐데, 그땐 그게 흔치 않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수영이를 위해 많이도 기도했죠.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걷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교회를 이임할 때까지 수영이가 걷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영이 소식은 끊겼고요. 아마 엄마는 수영이를 늘 업고 등하교를 시켰을 겁니다.
우리는 아이는 나면 으레 성장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다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제 손자 녀석은 만날 때마다 잘 커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영이가 떠오릅니다. 제 손자 서준이는 이번에 딸내미와 함께 왔을 때 두 달 만에 보는데 성큼 자라 있었습니다.
이유식을 하면서 볼에 살이 붙어 보기 좋게 통통합니다. 살결도 희고 고운데다 포동포동 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이쯤해서 야유성 발언을 하고 싶은 대목이란 거 압니다. 뭐, 제가 듣지 못하는 데서니 맘껏 하시기 바랍니다. 임금님도 없는 데서는 욕먹는대요. 뭐.
이유식이라며 딸내미가 채소며 곡물이며 혼합하여 옅은 죽을 끓여 먹입니다. 꼭 참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 받아먹듯 잘도 받아먹습니다. 얼마나 먹음직스런 모습인지 저도 그 서준이 이유식이란 걸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습니다. 퉤퉤! 순식간에 입에서 밀어냈습니다.
왜냐고요? 맛이 없어서요. 그런데 손자 녀석은 그걸 그리 맛있게 먹는 거예요. 맛이 있어 잘 먹는 줄 알았던 건 순전히 이 할배의 착각이었답니다. 제 입맛엔 영 아니었습니다. 밍밍한 게 죽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게,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딸내미도 그리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자라는 손자...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