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주(22) 일병이 쓰러진 다음날, 김재량(23) 상병이 군 헌병대 조사실에서 쓴 진술서다. 김 상병은 이 진술서에서 가해병사 지아무개(22) 상병과 나눈 대화를 자세하게 담았다.
군 수사기록
윤승주 일병은 떠났지만 후폭풍이 부대를 뒤집어 놓았다. 포대장도 부대원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했다. 포대장을 비롯한 대대 간부들이 일제히 보직 해임됐고, 직무유기 등으로 형사 입건됐다. '마음의 편지' 작성 등 부대 정밀진단이 며칠에 걸쳐 진행됐다.
동료나 후임병사들은 김 상병에게 고마워했다. 부대 내 부조리가 많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상병을 바라보는 부대 간부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부대에 몰아친 칼바람을 원망하며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한 마디씩 싫은 소리를 툭툭 던지는 수준이었다.
"아~아! 네가 그 유명한 재량이냐?""저 새끼 때문에 (내가) 부대에서 장기 복무가 안 돼.""전출 가고 싶지 않냐? 갈래? 말래?"나중에는 김 상병에게 욕설까지 내뱉으며 인격적인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김 상병이 맡은 부대 업무와 관련해서도 쉽게 협조를 잘 해주던 간부들이 사건 이후에는 훼방을 놓거나 불필요한 일들을 더 벌여 놓았다. 김 상병은 3개월 넘게 간부들에게 시달리면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고 했다.
김 상병이 정말 참기 힘들었던 것은 간부들의 괴롭힘만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윤승주 일병에 대한 기억과 미안함으로 그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그는 의무반에서 자행된 폭행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온 일상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윤승주 일병이 부대로 전입오기 전이었다. 김 상병은 의무반에 갔다가 이아무개 상병이 이아무개(22) 일병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 옆에 의무지원관인 유아무개(24) 하사가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유 하사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김 상병은 '(의무반에서) 구타가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일화도 김 상병을 괴롭혔다.
윤승주 일병이 폭행으로 쓰러지기 1~2주 전의 일이다. 윤승주 일병과 지 상병이 의무반에서 본부포대로 걸어오다가 김 상병과 마주쳤다. 지 상병에게 경례를 한 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지 상병이 "본부포대에 간다"고 대답을 하는데, 옆에 있던 윤승주 일병이 김 상병을 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김 상병은 윤 일병에게 "요새 군생활 할 만하냐"고 물었고, "예,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지 상병의 눈치를 본 윤 일병의 표정이 갑자기 싸악 굳어졌다. 김 상병은 지 상병에게 "왜 이렇게 군기를 잡으십니까"라고 농담처럼 말한 뒤 헤어졌다. 하지만 그때 윤 일병의 굳어진 표정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김 상병은 "지금 생각해보니, 혹시 그 표정이 나에게 보내는 구조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때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게 한으로 남는다"고 회상했다.
후회와 안타까움은 김 상병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는 윤승주 일병의 영결식이 끝난 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칼을 든 이아무개 병장이 윤승주 일병을 쫓아가는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군수과에서 일하며 맛스타(군용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1·2·3·본부포대 보급계와 의무대 막내인 승주(윤승주 일병)가 배급을 받으러 왔다. 승주가 '김재량 상병님 맛스타 받으러 왔습니다' 하고 말해 내가 챙겨주고 있는데, 승주 옆에서 누군가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의무반 앰뷸런스 운전병 이 병장이었다. 이 병장을 보고 승주가 기겁했다. 이 병장이 칼을 들고 쫓아오자 내가 승주 손을 잡고 같이 뛰었다. 계속 뛰는데, 승주가 '김재량 상병님, 못 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그러냐 했더니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고 하더라. 승주의 허벅지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그 악몽을 일주일 동안 매일 똑같이 꿨다. 잠을 못자서 수면제를 먹어야 했다."[변화] 국방부 장관 대국민사과, 그는 강제 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