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새섬의 분위기
황보름
어느 여행자에게서 서연교와 새섬에 대해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니까 내가 따라온 사람들은 서연교를 통해 새섬으로 건너가려던 사람들이었던 거다. 뭐, 잘됐다. 온 김에 새섬에 한 번 들어가보자.
서연교는 서귀포항과 새섬을 잇는 다리이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다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안개 덕분에 신비한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는 서연교는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돛단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제주 전통배인 '테우'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테우를 타고 바다를 건너듯 서연교를 타고 새섬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왜 새섬의 이름은 새섬인 걸까? 혹시 새가 많아서? 그건 아니란다. 섬안에 억새풀인 새(茅)가 많아 새섬이라 이름 붙여졌단다.
새섬은 산책로였다. 1.2km에 달하는 산책로가 목재데크, 자갈길, 숲길 등으로 이어져있었다. 산책로를 걸으며 본 섬의 모습은 묘하고 독특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느꼈던 이국적인 정취가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삼삼오오 함께 산책에 나선 가족단위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은 나와 저 앞의 서양인 할아버지 한 명뿐인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 아침이고, 안개가 끼어 있고, 나른하면서 상쾌하고, 사람들 속에 있지만 유독 더 혼자인 것 같은 이런 분위기. 평소엔 이런 분위기가 쉽게 잡히지 않으므로 나는 음악을 통해 이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려보기로 했다.
이어폰을 꽂고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들었다. 안개처럼 애절한 비올라 선율이 귀를 통해 온 몸에 감겨 왔다. 그런데 너무 분위기를 잡았던 걸까. 걸음이 심하게 느려졌다. 사람들이 다 나를 추월해 간다. 한 명 빼고.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새섬을 걷는 내내 서양인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 걸었다.
새섬 산책을 끝내고 다시 서연교로 올라와 다리 중간쯤의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와 봤다.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끔 꾸며진 공간이 나왔다. 아래로 내려오기 전에 봤던 할아버지는 다리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혹시 할아버지가 아직도 거기 있는가 싶어 올려다 봤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혼자였지만, 왠지 이제야 진짜 혼자가 된 기분이 들어 음악 볼륨을 높이고 대충 아무 데나 앉아 버렸다.
앉아서 할 일이라곤 바다를 보는 것뿐이었는데, 안개에 가려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나는 평생 볼 안개를 다 본 것 같다.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마땅히 보고 있지는 않은 흐릿한 상황. 이런 상황은 꽤 익숙하다. 목적이나 목표가 없으면, 꿈이나 의미가 없으면, 나는 금세 시무룩해진다. 하루가 재미없고, 움직임도 굼뜨다. 이럴 땐 어떻게든 스스로 움직일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방법 중 하나는 저 멀리 어딘가 쯤에 상상 속 깃발 하나를 꽂아 놓는 것. 그럼 그것을 향해 가기만 하면 되니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마음만 편할 뿐이다. 목적지로 향해 가는 발걸음은 명쾌하지 않다. 안개처럼 흐릿한 잡념들이 목적지를 가린다. 그럼에도 목적지 즈음을 향해 걸을 뿐이다. 저기 어디쯤에 바다가 있듯, 깃발이 있듯, 목적지도 있을 거라는 사실 하나만 믿고.
믿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으므로, 에둘러 가야 할 때가 더 많다. 여러 방해물들이 옆구리를 찌르며 다가오니까. 갑자기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한순간에 주위가 부산해졌다. 대가족 일행이 안개에 가려진 바다를 보려 내 눈 앞에 진을 치고 섰다. 일어나자.
천지연 폭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