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완주한 서울에서 온 목수 "좋다!"

[30일, 제주를 달리다 23] 그 스물한 번째 날, 올레 7코스 그리고 강정 마을

등록 2015.10.30 10:56수정 2015.10.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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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황보름

26코스, 400km가 넘는 제주 올레길

제주를 한 달간 여행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으레 내가 올레길을 걸으려는 줄 알았나 보다. 짧은 2박 3일 여행 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보니,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던 거다.


엄마도 여행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떠는 내게 말했다.

"엄마도 올레길 한 며칠 걷고 싶다. 이틀이라도. 삼일이면 더 좋고."

나는 올레길을 걸을 생각은 없었지만, 엄마가 원한다면 같이 걸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엄마의 오랜 꿈은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는 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점점 요원해져 가고 있으니, 올레길로 엄마의 꿈을 달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럴래? 중간에 와. 같이 걷지 뭐."
"그럴까?"

엄마가 언제쯤 오면 좋을지 날짜도 다 맞춰놓고, 비행기까지 알아놨는데, 돌연 엄마는 제주도 여행 포기 선언을 해왔다. 왜냐고 물어보니 이번엔 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란다. 몇 번 더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엄마는 끝내 거절했다. 그렇게 제주 올레길 걷기 계획도 사라졌다.


나는 제주에서 많이 걷고 싶었다. 하지만 걷고 싶을 뿐이었지, 어디를 걷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꼭 올레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올레길을 여행 중에 자주 걷게 됐다. 주로 해안도로로 걷다 보니 그랬다. 올레길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제주 올레길은 많은 부분 해안도로와 겹친다.

코스 몇 개 있겠거니 했다. 사람들이 올레길을 완주했다고 해도 며칠 걸었겠거니 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레길엔 무려 26코스가 있었다. 총 길이도 400km가 넘었다. 올레길을 다 이으면 얼추 제주 땅 모양이 될 정도였다.


나 역시 걷는 걸 좋아하는지라 걷기의 좋은 점은 당장이라도 몇 개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목표를 확실히 두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심정이 궁금했다. 며칠 휴가를 내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아예 회사를 그만두거나 장기 휴가를 얻어 전 코스를 완주하는 사람들. 올레길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무얼까. 사람들은 올레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올레길 다 걸은 후, '좋다!'는 느낌

세화 해변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때,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을 만난 적이 있다. 구릿빛에서 한참을 더 가 초콜릿빛 얼굴 색을 하고 있던 그는 "올레길을 걷는 중이에요"라고 했다. 역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21코스에서 시작해 1코스로.

서울에 살다가 제주로 내려와 목수일을 하고 있다던 그는 놀랍게도 이미 한 번 올레길을 완주한 적이 있단다. 나는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그가 차분히 답을 해주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할까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제주에 사는 고모부에게 연락이 왔어요. 와서 본인 일을 좀 거들지 않겠냐고. 제가 건축학과를 졸업했는데 아직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내려와서 고모부 일을 도와 목수일을 시작했어요. 말이 목수일이지 아직은 도와주는 정도예요."

"와, 목수요? 제주엔 목수가 많나요?"

"제주엔 목수가 할 일이 꽤 많아요. 새로 짓는 펜션이나 카페들도 많고 해서요. 그런데 일당은 약해요. 재료는 물 건너 오는 거라 육지보다 비싼데도요. 아무튼 두세 달을 쉬지도 않고 일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죽어라 일하다 보니 어느 날 이게 뭔가 싶더라구요. 남들은 제주에 쉬러 온다는데 나는 바다 구경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고모부에게 말씀드렸죠. 시간을 달라.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제주에 온 기념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일하던 습성이 남아있는지 제가 하루에 두 코스를 막 걷고 있는 거에요. 새벽 일찍 일어나 쉬지도 않고 걷다가 밤이 되면 자고, 다음 날 또 미친 듯 걸었죠. 나중엔 무릎도 아프고 입안도 다 트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올레길이 거의 다 끝날 무렵부터는 하루에 한 코스만 걸었어요. 그렇게 다 걷고 나니까, 뭐랄까, 허탈하달까?"

"허탈한 기분밖에 안 들었어요?"

"아니요, 사실,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그 기분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겠더라구요. 나를 찾았다는 말은 왠지 간지럽고, 뭔가를 깨달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그런데 '좋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고. 그때 다시 한 번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엔 천천히. 하루에 한 코스만. 주위도 좀 둘러보고, 마음의 여유도 갖고 하면서."

그래서 이번엔 하루에 한 코스만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눈이 떠지면 일어나 한 코스를 걸은 후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맥주 한잔 하면서 푹 쉬는 똑같은 하루를 보름째 이어오는 중이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다!'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기가 어디 쉬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번 걷기를 끝낸 뒤 그가 '좋다!'라는 기분 위에 과연 무슨 생각과 깨달음을 얹게 될지도 궁금했다.

느릿하면서도 정확하게 말을 하는 그의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질문을 받으면 약간 뜸을 들인 뒤 천천히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상대방 귀에 딱 박히게 내보였다. 왠지 꼭 해야 할 말, 중요한 말만 하며 사는 사람일 것 같았다.

좋았지만, 겁이 나기도 했던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황보름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황보름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황보름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 황보름

오전 한 시까지 이어진 지난 밤의 열기를 아직 배 속에 가득 안은 채 일어난 오늘. 체크아웃 시간을 훌쩍 넘겨 억지로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며 나는 얼마 전 만난 목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오늘 올레길을 걷는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올레 7코스. 올레 7코스는 어제 들렀던 외돌개에서 시작해 월평 아왜낭목까지 14.2km의 길이다. 나는 끝까지는 가지 않고 9km 정도 걸은 후 강정천에서 강정 마을로 빠져 2년 전에 가봤던 강정 평화책방에 들를 생각이었다. 그때처럼 유자차를 마셔야지. 유자차를 마신 후엔, 모슬포항 쪽으로 가면 된다. 앞으로 3박을 책임져줄 새 게스트하우스가 그곳에 있다.

올레 7코스는 경치가 그만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길 덕택에 걷는 즐거움도 컸다. 아름답게 조성된 목재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숲길이 나오고, 숲을 헤쳐 나오면, 돌길이 기다리고 있고, 돌길을 벗어나면, 계곡이 있고, 계곡을 건너면, 법환포구, 라면 집, 캠핑장, 흙길이 이어졌다. 1m도 안 되는 좁은 길이 아슬아슬하게 밭 옆으로 나 있기도 했다. 하나의 길을 걷는데 다양한 경험이 따라왔다. 사람들이 왜 유독 올레 7코스를 추천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길을 걷는 내내 나는 긴장해야 했다. 나 외의 올레꾼을 만나지 못했다. 메르스 영향으로 관광객이 팍 줄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 듯했다. 사람이 몰릴 땐 줄을 서서 걷기도 한다던 일강정 바당올레도 나는 홀로 걸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돌길을 걷는 기분은 분명 좋아야 했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내내 두려움을 안고 걸었다.

이 길을 걸을 때만큼 혼자인 게 싫었던 적이 없다. 그 누구라도 한 명 내 옆에 있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아름다운 자연을 눈에 꼭꼭 눌러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재미와 긴장감, 황홀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걸음이 4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러다 강청천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훅 새어 나왔다. 마을로 들어서면 분명 사람이 있을 터였다. 그럼 두려울 일도 없겠지.

제주 강정 마을엔 아직도 슬픔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황보름

 길 위의 성당
길 위의 성당황보름

 길 위의 강정 마을 주민들
길 위의 강정 마을 주민들 황보름

2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다. 매체를 통해 접한 강정 마을 이야기는 처참했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강정 마을 주민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강정 마을 소식을 들으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공동체가 산산 조각 나버렸다는 사실이다. 해군 기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따라 피붙이 같던 이웃이 몇 년 째 말도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피붙이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이 남보다 더 먼 사이가 되었다. 유독 끈끈한 정이 넘쳐 흐르던 이곳 강정의 공동체가 부서진 이유는 분명했다.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는 않은 것이다.

멀리 섬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육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때 '강정평화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라는 운동을 알게 됐다. 작가와 시민들이 십만권의 책을 모아 강정에 보내는 운동이었다. 자연과 생태, 평화가 파괴되고 있는 강정 마을에 책을 보냄으로써 다시금 강정을 평화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 운동에 대해 알아보다 '강정 평화책방'을 알게 됐다. 이곳은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주 여행을 하던 그때, 버스를 타고 강정마을에 와 평화 책방에 들렀다. 한 시간 가량 그곳에 머물며 유자차를 마셨다. 올레꾼도 아닌 여행객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와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카페 주인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일부러 오신 거예요?"
"네, 책방이 있다고 해서요. 응원도 해드리고 싶고요."
"이렇게 한 분 한 분 찾아오시는 것이 정말 힘이 되요. 정말…. 그럼, 마음껏 쉬다 가세요."

유자차를 마신 후엔 새로 지어지고 있다던 통물 도서관에 가보았다. 하지만 도서관은 아직 뼈대도 세워지지 않았었다. 그 길로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던 게 2년 전 일이다.

아름다운 올레 7코스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나는 강정 마을로 들어서며 얼른 사람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을 보면 와락 안기고 싶을 만큼 가슴이 잔뜩 졸아든 상태였다. 그런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인 사람은 제주도민이 아닌 경찰. 순간 두려움은 확실히 사라졌다. 대신,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다른 감정이 움찔거렸다. 경찰 두 명이 강정천을 건너 강정 마을로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2년 전 이곳에 들르긴 했었지만, 이후 2년간 나는 강정 마을을 잊고 지냈다. '내 할 일이 빠듯했다'고 쓰고 싶지만 핑계인 걸 안다. '눈을 사로잡는 사건 사고가 정말 많았다'라고 쓰는 건 핑계가 아닐 것이다. 이건 사실이니. 때문에 강정마을에 세워진다던 해군기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시 찾은 강정 마을은 2년 전 그때와 똑같이 평화를 위해 처절히 싸우고 있었다. 강정천을 가득 메우고 있는 플래카드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길을 따라 걷는 내게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 성당에 다닐 때 듣곤 하던 그 말투, 신부님의 말투였다. 앞으로 걸어가자 신부님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마침내 길 위에 서 있는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길 위의 성당이었다. 신도 세 명이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길 위의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아마도 해군 기지 정문일 듯한 곳이 보였고, 그 앞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 마을 주민들이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내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슬픔, 미안함, 처참함 같은 기분이 온 몸을 때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이크를 타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저 뒤에서 들려온다. "이미 해안기지가 다 지어졌는데 이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신부님은 말했다. 해안기지가 다 지어진 것을 이때 알았다. 

신부님의 그 뒷말은 못 들었지만, 나는 그 뒷말이 무엇일지는 굳이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이들의 말을 들어준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해결된 것도, 나아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꿈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고, 절차적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개인의 삶, 공동체적 삶일 수도 있고, 공정함, 법, 평화, 환경일 수도 있고, 1.2km 길이의 너럭바위일 수도 있고, 미래이거나 정신, 정의, 가치일 수도 있는 많은 말들이 경찰 벽 앞 허공에 눈물처럼 흩어져있는 있는 것이 내 눈에는 보였다.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가.

최소한 남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진 말기

신부님을 제외한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그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나 혼자 견뎌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어떻게'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가. 생각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내가 초라하게 생각됐다. 그때 소로가 <시민의 불복종>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한 인간의 의무가 어떤 악(비록 그것이 엄청난 악일지라도)을 근절하는 데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라고는 물론 할 수 없다. 그는 그 밖에도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추구할 온당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그 악과 관계를 끊을 의무가 있으며, 비록 더 이상 그 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 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 내가 다른 사업이나 계획에 전념하고 있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그를 괴롭히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시민의 불복종>중에서

우리는 한 명의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소로의 위의 말을 떠올리고는 당장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초라해지지 말자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모든 사람이 사회의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못할 것이다. 밥벌이가 우리 발 앞에 놓여있으니까. 그래서 밥벌이는 내겐 슬픔과 같다. 하지만 소로의 말처럼 우리에겐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추구할 온당할 권리가 있다." 대신 우리는 적어도 우리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진 말아야 하겠다. 우선은 이것을 지키는 것이 악과 불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도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변변찮은 힘이지만 우리의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길을 가다 서명을 할 수도 있고, 자기가 알게 된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으며, 시민의 뭉친 힘이 필요할 때 시간을 내 참여할 수도 있고, 올레길을 걷다가 강정 마을에 들러 이곳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응원의 제스처를 이곳 사람들에게 건네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신부님과 미사를 듣고 있는 세 명의 신자, 해안 기지 정문에서 투쟁하고 있는 강정 마을 주민들, 그 뒤에 서 있는 경찰들, 그리고 해안 기지 안에서 일을 하거나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들 중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화책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를 마시며 내가 지금 본 것에 대해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쉬는 날이었나 보다. 문이 잠겨 있다. 시간을 보니 여유도 없다. 더 늦기 전에 모슬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이번 게스트하우스는 모슬포항 근처에 있었다. 올해 지어진 게스트하우스라 깨끗하고 또 무엇보다 1인실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 예약했던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어렵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동네 한가운데에 귀엽게 솟아 있는 예쁜 가정집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자 미리 도착해 있던 내 붉은 색 캐리어가 나를 반긴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했다. 여행 중 알게 된 건데, 제주엔 짐을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옮겨주는 서비스 업체가 몇 곳 있다. 짐이 많은 올레꾼이나 나처럼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이곳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두 분은 밝고 쾌활했다. 유통업을 했다던 남사장님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넉살 좋게 말을 걸어왔다. 보여준 1인실 방은 아담하고 깔끔했으며, 캐리어를 대충 놓고 나와 본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마을 길을 걸으니 땅 아래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다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적한 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강정 마을도 예전엔 이처럼 걷기에 좋은 평화로운 마을이었겠지?
덧붙이는 글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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