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 달라"는 말에 공장 매니저 "진단서 떼오라"

[빅맥의 쉐프 도전기③] 쉽지 않은 '워킹 홀리데이'

등록 2015.10.27 10:56수정 2015.11.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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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지구 반대편 먼 이국 땅으로 가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닉네임 빅맥)의 모습을 글로 담아봅니다. 이 글을 통해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공부가 얼마나 싫었기에 그 힘든 노동을 선택했던 것일까?

큰 애가 호주로 떠나던 시기를 전후해서 인터넷에서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검색을 자주 했었다. 실상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힘들다는 내용이 거의 다였는데, 큰 애는 어떻게 그 힘든 일을 견디어 내었을까?

내가 보낸 어린 시절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당시의 우리는 어린 나이부터 농사일을 했다. 농번기에는 집안 일을 도우라고 학교에서 임시 방학을 했을 정도로 노동은 공부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우리에게 익숙했다.

당시 부모님들은 우리가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을 위해 일거리를 모아 두었던 것 같다. 주말에 농사 일 한두 가지는 꼭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테니까.

아버지가 교회 장로라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평일에는 방과 후에 소를 몰고 들로 나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하고, 그동안 풀을 한 망태기 베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매일 하는 일이라서 후다닥 해치우고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역시 초등학생인 동생과 함께 겨울 방학 동안 매일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근처 산에 가서 리어카 가득 땔감을 베고 도시락을 먹고 집에 오는 코스다. 당시에는 대부분 가정에서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가 귀했다. 초등학생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 동생도 그때 많이 힘들었는지 지금도 쌍둥이 아들들에게 가끔 그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은 노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고, 그건 우리 큰 애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에 가기 전에 택배 회사에서 잠깐 몸을 사용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본 것이 노동 경험의 전부일 것이다. 그런 큰 애가 인터넷에서는 지옥처럼 묘사된 워킹 홀리데이를 견뎌낸 것이다. 공부가 얼마나 싫었기에, 그 힘든 노동을 선택했던 것일까? 가슴이 아팠다.

제대로 된 노동 해본 적 없는 아들이 겪은 '노예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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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홀리데이 홍보 화면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이 겪는 일상은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큰 애는 워킹 홀리데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공부를 선택하지 않았다. 약간의 용돈만 가지고 브리즈번에 도착한 큰 애가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긴가민가 했다. 정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나중에 큰애 에게서 들은 내용을 정리하자면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한국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덩치가 있는 아이는 호주인들이 하는 육우 가공 공장이 좋다.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재빠른 몸이라면 농장도 벌이가 괜찮다. 영어가 영 안 되고, 정보도 없으면 현지 교포들이 운영하는 숍에서 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급여나 다른 대우 측면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육우 가공 공장은 냉장 창고에 걸어 놓은 육우를 주문서에 따라 대기 중인 트럭에 실어 주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중량물을 다뤄야 하므로 힘이 좋아야 한다. 딸기 농장으로 대표되는 농장 일은 다 익은 과일을 수확하는 거다. 수확한 만큼 돈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설거지, 청소, 서빙 등 주로 식당과 슈퍼마켓과 관련된 일이다.

큰 애는 어찌어찌 백팩커를 찾아서 숙소 문제는 해결했는데, 일자리에 대해서는 내가 수배해 준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얼마 동안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알아 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한인 소셜 커뮤니티에서 구하는 일자리(큰 애가 '노예 잡'이라 표현한)는 시급이 다른 일의 절반 밖에 안 됐지만 그런 일도 처음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큰 애는 얼마 동안을 백팩커에서 뒹굴뒹굴 보내다가, 이미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거쳐간 누나를 둔 또래 친구와 함께 딸기농장에서 첫 번째 일을 시작했다. 성과급제로 운영되는 딸기 농장은 시즌이 끝나가던 참이라 작황이 시원치 않았고, 일하던 학생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큰 애가 쉽게 취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덩치가 크고 동작이 굼뜬 편인 큰 애는 끝물인 딸기밭에서 별로 돈 벌이가 되지 못하는 일을 하다가 한 달 만에 다시 시내로 나왔다고 한다.

딸기밭에 가기 전에 브리즈번 직업소개소에 이력서를 내놓았는데, 마침 때가 되어 시내 육우 가공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여기서 열흘 정도 일을 했는데,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다 보니 손목이 아파 매니저에게 파스 같은 소염제를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 이야기는 당연하게 할 수 있는데, 호주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공장 관리자들 사이에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고, 손목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소견서를 받아 오라고 했단다. 그렇게 얼마간 일을 하다 그 공장도 그만 두었다.

그 다음에는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청소 일을 구했는데, 시급이 너무 적어서 두 달 정도 하다가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갔다. 대충 들어봐도 보통 힘든 노동이 아닌 것 같은데, 공부는 그 보다 더 힘든 것이었을까? 나는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아들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이라도 호주에 있는 학교에 들어 가면 바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신호를 끊임 없이 보냈다. 일단 어학과정이라도 시작해보라고 설득했지만, 큰 애는 워킹 홀리데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공부를 선택하지 않았다.

예전에 신문에서 정혜신 박사가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도 스크랩되어 내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그 칼럼의 제목은 '그게 다가 아니다' 이다. 나는 큰 애를 지켜보면서 이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공감하게 되었다.

"외형상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많이 상담한다. 안정된 경제력, 괜찮은 직장,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사람이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호소한다."

부유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물신주의 사회에서,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읽을 때마다 공감이 가고, 삶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큰 애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려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런 힘든 노동을 감수한 것이 아닐까?
#호주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청년실업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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