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강정 마을 주민들
황보름
2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다. 매체를 통해 접한 강정 마을 이야기는 처참했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강정 마을 주민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강정 마을 소식을 들으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공동체가 산산 조각 나버렸다는 사실이다. 해군 기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따라 피붙이 같던 이웃이 몇 년 째 말도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피붙이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이 남보다 더 먼 사이가 되었다. 유독 끈끈한 정이 넘쳐 흐르던 이곳 강정의 공동체가 부서진 이유는 분명했다.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는 않은 것이다.
멀리 섬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육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때 '강정평화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라는 운동을 알게 됐다. 작가와 시민들이 십만권의 책을 모아 강정에 보내는 운동이었다. 자연과 생태, 평화가 파괴되고 있는 강정 마을에 책을 보냄으로써 다시금 강정을 평화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 운동에 대해 알아보다 '강정 평화책방'을 알게 됐다. 이곳은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주 여행을 하던 그때, 버스를 타고 강정마을에 와 평화 책방에 들렀다. 한 시간 가량 그곳에 머물며 유자차를 마셨다. 올레꾼도 아닌 여행객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와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카페 주인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일부러 오신 거예요?""네, 책방이 있다고 해서요. 응원도 해드리고 싶고요.""이렇게 한 분 한 분 찾아오시는 것이 정말 힘이 되요. 정말…. 그럼, 마음껏 쉬다 가세요."유자차를 마신 후엔 새로 지어지고 있다던 통물 도서관에 가보았다. 하지만 도서관은 아직 뼈대도 세워지지 않았었다. 그 길로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던 게 2년 전 일이다.
아름다운 올레 7코스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나는 강정 마을로 들어서며 얼른 사람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을 보면 와락 안기고 싶을 만큼 가슴이 잔뜩 졸아든 상태였다. 그런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인 사람은 제주도민이 아닌 경찰. 순간 두려움은 확실히 사라졌다. 대신,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다른 감정이 움찔거렸다. 경찰 두 명이 강정천을 건너 강정 마을로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2년 전 이곳에 들르긴 했었지만, 이후 2년간 나는 강정 마을을 잊고 지냈다. '내 할 일이 빠듯했다'고 쓰고 싶지만 핑계인 걸 안다. '눈을 사로잡는 사건 사고가 정말 많았다'라고 쓰는 건 핑계가 아닐 것이다. 이건 사실이니. 때문에 강정마을에 세워진다던 해군기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시 찾은 강정 마을은 2년 전 그때와 똑같이 평화를 위해 처절히 싸우고 있었다. 강정천을 가득 메우고 있는 플래카드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길을 따라 걷는 내게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 성당에 다닐 때 듣곤 하던 그 말투, 신부님의 말투였다. 앞으로 걸어가자 신부님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마침내 길 위에 서 있는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길 위의 성당이었다. 신도 세 명이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길 위의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아마도 해군 기지 정문일 듯한 곳이 보였고, 그 앞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 마을 주민들이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내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슬픔, 미안함, 처참함 같은 기분이 온 몸을 때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마이크를 타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저 뒤에서 들려온다. "이미 해안기지가 다 지어졌는데 이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신부님은 말했다. 해안기지가 다 지어진 것을 이때 알았다.
신부님의 그 뒷말은 못 들었지만, 나는 그 뒷말이 무엇일지는 굳이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이들의 말을 들어준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해결된 것도, 나아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꿈일 수도 있고, 추억일 수도 있고, 절차적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개인의 삶, 공동체적 삶일 수도 있고, 공정함, 법, 평화, 환경일 수도 있고, 1.2km 길이의 너럭바위일 수도 있고, 미래이거나 정신, 정의, 가치일 수도 있는 많은 말들이 경찰 벽 앞 허공에 눈물처럼 흩어져있는 있는 것이 내 눈에는 보였다.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가.
최소한 남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진 말기신부님을 제외한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그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나 혼자 견뎌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어떻게'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가. 생각만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내가 초라하게 생각됐다. 그때 소로가 <시민의 불복종>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한 인간의 의무가 어떤 악(비록 그것이 엄청난 악일지라도)을 근절하는 데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라고는 물론 할 수 없다. 그는 그 밖에도 다른 할 일들이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추구할 온당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그 악과 관계를 끊을 의무가 있으며, 비록 더 이상 그 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그 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할 의무가 있다. 내가 다른 사업이나 계획에 전념하고 있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앉아 그를 괴롭히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의 어깨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시민의 불복종>중에서우리는 한 명의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소로의 위의 말을 떠올리고는 당장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초라해지지 말자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모든 사람이 사회의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못할 것이다. 밥벌이가 우리 발 앞에 놓여있으니까. 그래서 밥벌이는 내겐 슬픔과 같다. 하지만 소로의 말처럼 우리에겐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추구할 온당할 권리가 있다." 대신 우리는 적어도 우리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타진 말아야 하겠다. 우선은 이것을 지키는 것이 악과 불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도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갈 수도 있다. 변변찮은 힘이지만 우리의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길을 가다 서명을 할 수도 있고, 자기가 알게 된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으며, 시민의 뭉친 힘이 필요할 때 시간을 내 참여할 수도 있고, 올레길을 걷다가 강정 마을에 들러 이곳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응원의 제스처를 이곳 사람들에게 건네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신부님과 미사를 듣고 있는 세 명의 신자, 해안 기지 정문에서 투쟁하고 있는 강정 마을 주민들, 그 뒤에 서 있는 경찰들, 그리고 해안 기지 안에서 일을 하거나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들 중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화책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를 마시며 내가 지금 본 것에 대해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쉬는 날이었나 보다. 문이 잠겨 있다. 시간을 보니 여유도 없다. 더 늦기 전에 모슬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이번 게스트하우스는 모슬포항 근처에 있었다. 올해 지어진 게스트하우스라 깨끗하고 또 무엇보다 1인실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 예약했던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어렵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동네 한가운데에 귀엽게 솟아 있는 예쁜 가정집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자 미리 도착해 있던 내 붉은 색 캐리어가 나를 반긴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했다. 여행 중 알게 된 건데, 제주엔 짐을 한곳에서 다른곳으로 옮겨주는 서비스 업체가 몇 곳 있다. 짐이 많은 올레꾼이나 나처럼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이곳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두 분은 밝고 쾌활했다. 유통업을 했다던 남사장님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넉살 좋게 말을 걸어왔다. 보여준 1인실 방은 아담하고 깔끔했으며, 캐리어를 대충 놓고 나와 본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마을 길을 걸으니 땅 아래로 가라앉았던 기분이 다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적한 길을 기분 좋게 걸었다. 강정 마을도 예전엔 이처럼 걷기에 좋은 평화로운 마을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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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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