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사무실 골방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주민들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김종술
그는 자꾸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흘릴 대목이 아닌데도 울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한 뒤에도 그랬다.
"경북 영덕은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로 알려진 대게가 유명하며,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송이 생산량이 전국 1위인 곳이다. 송이로 거둬들이는 수익만 하더라도 300억 원 가량이다. 뛰어난 자연환경 때문에 한 해에 관광객만 천만 명이 찾는다.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커트 머리. 청바지 차림에 빨간색 등산화는 '탈핵 전투복'처럼 보였다. 그는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다가 시장통에서 기자와 돌솥밥을 먹었다. 오는 11월 11일에 열릴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독려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그는 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아래 대책위) 대외협력위원장. 영덕 5일장이 열리는 지난달 25일 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식당에서 나와 대책위의 작은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7살 때 대구로 이사 온 그는 2002년에 영덕이라는 도시에 반했단다. 풍요로운 바다와 아름다운 산, 그는 남편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귀농했다.
"첫눈에 반한 도시로 귀농, 그리고 시작된 '전쟁'"하지만 이듬해부터 이 동네에서는 전쟁이 시작됐다. 핵폐기물 유치 반대운동이었다.
"2003년, 2005년에 주민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동참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2년 뒤에 대학을 들어갔기에 핵에 대한 지식은 상식 수준이었다. 2010년 영덕군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핵발전소 바로 알기'라는 글을 온라인에 몇 번 올렸다. 2011년 3월에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위기감과 공포심이 들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요즘도 남편은 그에게 '가짜 농민'이라고 한다. 집에 붙어있을 새가 없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는 콩, 수수, 조 등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관리가 엉망이란다. 남편도 바깥 일(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면 악취가 풍기고 파리가 꼬인다. 그럼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핵발전소는 영덕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데도 주민에게 묻지도 않았다. 핵발전소를 짓는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주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청와대 옆이나, 서울 강남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어땠을까?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핵발전소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말도 쏙 들어갔을 것이다.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은 강남 주민들을 향해 '님비현상'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 결국 영덕 주민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