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차 얻어 탔다가... 참 곤란하게 됐다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 가는 길... 유년의 고향 마을 떠올리게 하는 정글 마을

등록 2016.03.23 15:13수정 2016.03.23 15:13
0
원고료로 응원
a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 주변에 자리한 정글마을 아낙네들이 가축에게 먹일 나뭇잎을 담은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가고 있다. ⓒ 송성영


도시에서 벗어난 버스는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 길을 따라 '바르디아'를 향해 내달린다. 내 바로 앞좌석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네팔청년과 그의 아버지가 타고 있다. 네팔 청년에게 터미널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네팔어로 적어준 쪽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얼마나 걸립니까?'
"한참을 더 가야 합니다. 당신이 내릴 곳을 알려 주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버스가 내달리는 신작로 좌우로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주변에 판잣집이며 초가집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초가집을 기와지붕이나 슬레이트, 양철 지붕으로 대체한 모습도 보였고 더러는 벽돌집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1970년대 한국의 가옥 형태와 변화를 한눈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왔다.

버스든 열차든 차창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은 장시간 편집되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방송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의 취향이나 시류, 편집자의 입맛에 따라 편집된다. 거기에다 음악을 깔아 사실과 상관없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차장 사이로 보이는 다큐멘터리 화면은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같은 풍경들

a

신작로 주변에 심심찮게 들어서 있는 네팔 초가집 ⓒ 송성영


얼마나 달렸을까. 국경도시, 마헨드라나가르에서 9시쯤 출발했는데 벌써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달리고 달렸는데도 평원이 펼쳐져 있다. 덥고 지루한 버스 안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칭얼거린다. 엄마는 빙글빙글 웃어가며 녀석을 혼내키지 않는다. 칭얼거릴 때마다 녀석의 볼에 입을 맞춘다. 그래도 소용없다. 녀석은 계속해서 칭얼거린다. 그럼에도 엄마는 끊임없이 안아주고 입을 맞춰 가며 달랜다. 구김살 없는 아이 엄마의 미소는 내게 자비로운 보살로 다가온다. 자비로운 보살의 미소는 반복되는 주변 풍경에 대한 지루함을 달래준다.

버스 안에서는 인도에서처럼 노래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도에서 장거리 지프차나 버스를 즐겨 타면서 들었던 노래 가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템포가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진다. 주로 고불고불한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내달렸던 인도와 달리 네팔에 들어와서는 평원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 음악에 비해 템포가 조금 빠른 듯하다.


5월 하순임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은 한여름 날씨처럼 후덥지근했다. 버스가 내달릴 때는 그나마 차창을 통해 바람을 쏘일 수 있지만 승객들을 내려주고 태우기 위해 정차할 때마다 후끈한 기운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함께 서남부 네팔의 강줄기는 메말라 있었다.

a

6월부터 시작되는 몬순을 앞둔 강줄기가 메말라 있다. ⓒ 송성영


어느 지역에서는 버스가 한창 공사 중인 강다리 아래로 내려서 시냇물처럼 쫄쫄 흐르고 있는 메마른 강을 건너기도 했다. 강다리는 6월 장마가 닥쳐오기 전에 공사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었다.


네팔 기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남부지방의 여름은 아열대이고 겨울은 온화하다. 이에 반해 북부지방의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엔 혹독한 추위가 몰아친다. 하지만 6월에서 9월까지 비를 몰고 오는 몬순은 모든 지역에 영향을 준다.

메마른 강을 건너 얼마쯤 달리던 버스는 중산간 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도로변 저만치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인도 산악지대에서 종종 목격했던 자연발화 산불이다. 인도에서는 산악지대라서 산불 진화에 대책이 없어 보였지만 이곳은 접근성이 좋은 중산간 지역임에도 산불을 방치해 놓고 있다. 가만 보니 불길이 검게 그을리고 지나간 자리에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건재하다.

중산간 지역으로 들어서고부터 하나 둘 검문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친절한 청년에게 아직도 무장 게릴라들이 출몰하는가 물었더니 더이상 무장 게릴라들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검문소 군인들이 버스에 오르지 않고 밖에서 대충 훑어 보고 통과시킨다.

a

중산간 지역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검문소가 나왔다.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들이 무장 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내가 네팔 국경도시에서부터 무작정 찾아가고 있던 길, 서부 네팔 중산간 지역이었다. ⓒ 송성영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네팔 무장 게릴라들은 2006년까지 활동했었다. 이들 네팔 반군 공산당 게릴라들은 전근대적인 소작제의 고통을 받고 있는 농민을 기반으로 혁명을 성공시켰던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을 기반으로 한 마오쩌둥주의, 마오이스트였다. 마오이스트들이 무장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내가 네팔 국경도시에서부터 무작정 찾아가고 있는 길, 서부 네팔 중산간 지역이었다.

1994년 중도좌파 노선을 걷던 네팔 공산당에서 분화되어 나온 또 다른 네팔 공산당, 마오이스트들은 무장봉기를 통해 토지개혁과 카스트 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경찰과 공무원, 힌두왕조와의 전쟁(People's War, 1996∼2006년)을 벌였다. 농촌을 거점으로 시작한 게릴라 투쟁은 2005년에 들어 전 국토의 80%를 인민 해방구로 만들었고 그 이듬해인 2006년, 왕정을 폐지시켰다.

그리고 2008년에 치러진 네팔 역사상 첫 제헌의회선거에서 제 1당이 되어 네팔 공산당 의장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개혁 과제였던 토지개혁 실패와 더불어 네팔의 고질적인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인민 해방을 외치며 무장투쟁을 벌였던 네팔 무장게릴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몇 군데의 검문소를 지날 무렵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네팔 청년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기서 내리세요."

나는 '바르디아'라는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아 재차 확인하지 못한 채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배낭을 챙겨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한때 네팔 게릴라들이 드나들었던 서부 국경도시 마헨드라나가르에서 출발한 지 5시간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여섯 사람들이 내게로 몰려왔다.

"숙소를 예약해 놓았습니까?"
"아니요."
"숙소 있는데 까지 가려면 지프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이곳에는 없습니까?"
"여기는 숙소가 없습니다."

버스가 멈춘 곳에는 숙소가 없었다. 이들은 버스 시간에 맞춰 지프차를 대기시켜 놓고 숙소로 모시고 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따라 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젊은 외국인 커플이 지프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었다.

"숙소가 이곳에서 멀리 있습니까?"
"예, 한참을 가야 합니다."
"숙소가 있는 곳은 어떤 마을입니까?"
"아주 좋습니다. 환상적입니다. 정글에 사는 동물들도 아름답습니다."

"당신들은 어느 숙소에서 묵었습니까?"
"우리가 타고 온 지프차를 이용하면 그곳으로 안내해줄 겁니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묵었던 숙소는 저렴합니까?"
"비교적 저렴합니다."

나는 젊은 캐나다 커플이 타고 온 지프차에 배낭을 실었다. 다른 지프차 운전기사들에게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더니 다들 웃는 얼굴로 "노 프러블럼!"으로 화답한다. 내가 선택한 지프차의 운전기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말수가 적었다.

"지프차 요금은 얼마나 내야 합니까?"
"우리 숙소에 묵으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저렴한 숙소를 찾고 있습니까? 내가 가고 있는 숙소는 어떻습니까? "
"숙소를 둘러보시고 얘기하시죠."

지프차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달렸다. 숲길과 작은 냇가를 건너 30분쯤 달린 끝에 마을이 나왔다. 잘 정돈된 마을이다. 그리 넓지 않은 논밭 사이로 초가집들이 보였다. 너저분한 도시와는 달리 길거리에 쓰레기 봉지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했다. 마을 앞으로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거기서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사내에게 잠시 지프차를 멈춰 줄 것을 요청했다.

"수영하는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 합니다."
"좋습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가당치 않은 숙소 시설

a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 송성영


a

바르비아 국립공원 주변 마을에 관광객을 위한 많은 숙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 송성영


내가 묵을 숙소는 강줄기 근처에 있었다. 너른 숙소 정원에는 열대야자수 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고 곳곳에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대식물들이 보인다. 정원  옆에는 높이가 10여 미터쯤 돼 보이는 망루도 있다.

화장실 문짝조차 없었던 인도 국경도시 반밧사의 숙소와는 천지 차이다. 그에 비하면 거의 호텔 수준이다보니 방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산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었는데 잘못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가당치 않은 시설이었지만 지프차를 거저 이용했기에 발을 뺄 수 없는 처지였다.

지프차를 운전했던 사내가 자신은 이곳 숙소의 매니저라 말하며 식당을 겸하고 있는 너른 홀로 나를 안내했다. 깔끔하게 정돈이 돼 있는 식당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매니저가 자리를 권하며 숙소를 상세하게 소개해 놓은 카탈로그를 건넸다. 숙소 이름은 '바르디아 어드벤처 리조트', 바르디아 내셔널 파크(Bardia National Park)라는 문구도 보인다.

"바르디아는 국립공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몰랐습니까?"
"예 전혀...."
"이 마을 근처에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바르디아는 네팔에서 유명한 국립공원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한 사내가 '내셔널 파크' 얘기를 꺼냈을 때 그들에게 '나는 내셔널 파크 보다는 작은 산간마을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내가 국립공원을 원치 않는다고 했을 때 국립공원 부근에 작은 산골마을이 있다고 말했을 것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네팔의 화폐는 인도처럼 루피로 부르고 있다. 네팔 루피가 인도 루피보다 1.6배 정도 가치가 떨어진다. 하지만 네팔의 물가가 인도 보다 비쌌다. 국립공원 주변의 리조트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고 인도에서는 가장 싼 숙소를 150루피 정도에 묵었는데 이곳 리조트에서 가장 저렴한 방값이 450루피였다. 매니저 말로는 이것도 이 마을의 게스트 하우스나 리조트 중에서 가장 싼 방이라고 한다.

"얼마나 묵으실겁니까?"
"아, 그게... 하루? 이틀? 이틀 정도요. 좀 더 둘러보고 정하겠습니다."

선택할 여지없이 가장 저렴한 방에서 묵기로 했다. 간단하게 숙박계를 작성하면서 매니저에게 물었다.

"오늘은 손님이 나 혼자뿐입니까?"
"예, 당신이 유일합니다. 비수기라서 요즘은 손님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토마토 몇 개로 끼니를 때웠기에 짐을 풀기 전에 먼저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밥값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싼 모모를 시켰는데 인도에서는 50루피 정도했던 것이 이곳에서는 200루피가 넘었다. 이 마을에 식당이 따로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a

내가 묵은 황토 집. 여행자들을 위해 내부에 화장실과 샤워장을 갖춰 놓았다. ⓒ 송성영


a

마을 곳곳에 네팔 소수민족 타루족의 전통적인 가옥이 들어서 있다. ⓒ 송성영


내가 묵을 방은 초가지붕의 황토 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의 옛 황토 초가집과 다를 바 없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에는 황토 흙바닥에 침대 하나 달랑 놓여 있었고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매니저 말로는 네팔의 소수 민족 중 하나인 타루 족의 전통적인 생활공간을 관광객들의 편리에 맞춰 약간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리조트에 마련돼 있는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설 무렵 정글 저만치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줄기를 앞에 두르고 있는 마을 곳곳에는 또랑물이 흐르고 있었고 거기서 어린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목욕을 하고 있었다. 또랑물에 목욕하고 있는 네팔 아이들은 까마득한 나의 유년 기억을 되살려 놓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고향 마을 곳곳에 또랑물이 흘렀다. 이곳 네팔 마을처럼 마을 앞으로 맑고 너른 시냇물이 흘러갔던 고향 마을, 얼마나 맑았으면 구슬 옥(玉)자와 시내 계(溪)를 써서 옥계리라 했을까. 한 여름, 코흘리개들이 하루 종일 산과 들로 싸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와 저 네팔 아이들처럼 마을 곳곳으로 흐르는 또랑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a

집 옆으로 흐르는 또랑물에 목욕하는 아이들. 어린 시절 나의 고향마을에서도 그랬다. ⓒ 송성영


하지만 우리들의 고향마을은 새마을 운동과 함께 급변했다. 지붕은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된 슬레이트로 뒤덮이고 논밭의 젖줄이기도 했던 또랑은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목욕은 고사하고 빨래도 할 수 없을만치 탁해졌다. 우리들의 놀이공터며 마을 어른들의 농토는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에 잡아먹히고 급기야, 수몰지역처럼 흔적도 없이 도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오랜 기억 속에 잠겨 있던 우리들의 옛 고향마을 모습을 이곳 네팔 정글 마을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조트 매니저 말대로 마을 어귀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리조트에서 하루 한 끼 정도를 시켜 먹기로 하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구멍가게에서 막대 빵 몇 개를 사들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코끼리를 만났다. 야생 코끼리가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울타리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물었더니 관광객들을 위한 정글 탐사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코끼리라고 한다.

a

관광객들을 위한 정글 탐사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코끼리. ⓒ 송성영


리조트로 돌아와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다친 무릎이 휘청거리면서 통증이 몰려왔다. 공연히 자전거를 탔다 싶다. 절룩거리며 숙소로 걸어가는데 매니저가 짜이 한 잔 하잖다.

"정글 탐험 하지 않으시렵니까?"
"오래 걷기에는 다친 무릎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지프차를 이용하는 코스도 있습니다."

리조트의 카탈로그에 보면 968㎢의 넓은 부지에 야생 상태가 잘 보존돼 있는 바르디아 국립공원에는 벵골 호랑이, 코끼리, 코뿔소 등 50여 종의 포유동물과 4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숙소 매니저 말로는 이곳 국립공원에 60여 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지프차를 타고 2박 3일 코스를 돌다보면 호랑이를 비롯해 코끼리, 코뿔소 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정글의 호랑이나 코끼리가 마을로 내려오곤 합니다."
"정말입니까?"
"그래서 밤에 돌아다닌 것은 위험합니다."

야생동물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기간은 먹을거리가 부족한 비가 많이 오는 몬순 기간이라고 한다. 대부분 자정이 넘은 시간, 새벽녘에 찾아오는데 그래도 언제 어느때 불쑥 나타날지 모르니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개나 염소 등의 가축들을 물어가기 일쑤고 코끼리는 한창 자라는 벼를 죄 뜯어 먹고 논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간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정글 가이드 일을 해왔다는 매니저는 이곳 정글에 대해 빠삭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코끼리는 많게는 30마리에서 적게는 5마리에 이르기까지 가족단위로 무리지어 다닌다고 한다. 이곳 정글에는 모두 다섯 그룹의 코끼리들이 떼지어 다닌다고 한다. 이들 중에 성질이 유순한 녀석들은 횃불을 들고 소리치면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데 포악한 녀석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달려든다고 한다.

정글 탐험을 나서 호랑이를 보고 싶었지만 내겐 여러모로 무리였다. 다친 무릎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정글 탐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한나절 정글을 걸어 탐색할 경우 3천 루피. 국립공원 입장료 천 루피와 가이드비, 식사비용을 포함한 가격이라고 한다. 지프차로는 2박 3일 패키지 코스가 있는데 미화로 100달러가 넘었다.

네팔 사람들이 볼 때는 잘 사는 나라 한국인 여행객이었지만 나는 한국에서나 인도 네팔 여행지에서나 적게 먹고 사는 가난한 배낭객에 불과했다. 정글 마을, 바르디아에서의 첫날 밤, 가끔씩 정글 숲에서 들려온다는 우렁찬 대자연의 소리, 호랑이 소리를 듣고 싶어 졸려오는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그만 깜박 잠들어 버렸다.
#네팔 초가집 #네팔 게릴라 #리조트 #바르디아 국립공원 #또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