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누비는 비즈니스맨 "한국에서라면 루저였겠죠"

[1인기업시대 ②] 스톡홀름에서 패션비즈니스 컨설팅하는 이하석씨

등록 2016.06.15 21:24수정 2016.08.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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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스톡홀름에서 패션 비즈니스 컨설팅 하는 1인기업가 이하석 하세스트 대표.
스톡홀름에서 패션 비즈니스 컨설팅 하는 1인기업가 이하석 하세스트 대표.이하석

# 마지못해 들어간 대학에선 길을 찾지 못했다. 반항기 가득했던 20대 초반엔 록, 펑크음악에 빠져 아예 레코드 회사를 차렸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함께 미국유학을 떠났지만 역시나 중퇴, 돌아온 그는 영어강사와 레코드회사 운영을 병행했다.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은 높은 연봉을 자랑했고 자존심 강한 그는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그 시절 누구도 그가 세계 무대를 누비는 비즈니스맨이 되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패션비즈니스 컨설팅사 하세스트(HARSEST)를 운영중인 1인기업가 이하석씨(37· www.haseok.com). 알고보니 그는 2000년대 인디음악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유명인사였다. 1999년 하드코어 전문 인디레이블 GMC 레코드를 직접 설립하고 10여년간 운영하면서 삼청교육대, 바세린(Vassline), 13Steps, 잠비나이, 아폴로18 등의 밴드들을 배출했다.

빡빡 민 머리에 비니, 온몸에 문신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반항기 가득한 청년은 어떻게 유럽무대를 누비는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하게 됐을까.

10년간 '돈 안되는' 음반회사, 스웨덴 중소기업에서 '절치부심'


 인디레이블 GMC레코드 운영당시의 이하석 대표.(왼쪽 4번째)
인디레이블 GMC레코드 운영당시의 이하석 대표.(왼쪽 4번째)이하석

"가부장적이고 엄한 아버지 슬하에서 반항심과 저항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어요. 덩치 크고, 불량하고, 한마디로 좀 노는 아이였죠. 한국사회의 잣대로 보면 고졸 출신에 돈 안되는 음반회사, 영어강사를 전전하던 루저였죠. 20대 철없던 시절엔 물질주의적인 성향도 강해서 적어도 BMW 520정도는 타야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의 인생이 바뀐 터닝포인트는 '스웨덴'이었다. 2009년 한 스웨덴 여성이 블로깅을 통해 그가 프로듀싱한 밴드에 인터뷰를 요청해왔고, 번역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레 그녀와 가까워지게 됐다. 8개월 열애끝 결혼에 골인했고 2010년 11월, 한국의 2030세대가 가장 이민가고 싶어가는 북유럽 스웨덴 시민이 된 것이다.

한국에선 전혀 발휘되지 않았던 잠재력이 갑자기 스웨덴에 와서 터진 것일까. 과거 없는 현재는 없는 법,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그의 내공은 10여년간 레코드회사를 운영해온 뚝심과 저력에 기반한 것이었다. 마니아 중심의 국내 인디음악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음반 비즈니스를 해왔던 '덕력'은 돈 주고도 못살 귀한 자산이었다.


 GMC레코드 대표로 활동하던 이하석씨.
GMC레코드 대표로 활동하던 이하석씨.이하석
결혼만으로 스웨덴에서의 모든 일이 쉽게 풀렸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300곳의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오는 곳은 3곳뿐, 드물게 인터뷰 기회가 생겨도 언어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았다. 피말리는 구직과정을 거치며 좌절하기도 했지만 스웨덴 정부의 도움으로 5개월만에 딱 맞는 직장을 찾게 됐다.

스웨덴 정부는 이민자 대상 무료 언어교육은 물론 사설업체에 위탁해 각자의 백그라운드에 맞춰 최적의 직업을 찾아주기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취업 후 '이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보다 '이 사회가 나를 인정해주는구나'하는 감동이 더 컸다.


패션디자이너 브랜드 샴푸들(Shampoodle)에서 인턴부터 시작한 이씨는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 DNA'를 발휘했다. 맨처음 출근하고 맨마지막에 퇴근하는 직원으로 각인됐다. 지나고 보니 그때 최선을 다했던 것이 회사 뿐 아니라 스스로의 강점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작지만 전세계 200여개 업체와 거래하는 기업에서 4년간 세일즈 매니저(Sales Manager)로 일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을 키울 수 있었어요. 회사 대표가 자유로운 마인드와 창조적인 기업가정신을 가진 젊은 친구인데 일일이 지시하기보다 길을 보여주는 리더형이었죠. 덕분에 세상을 보는 제 안목도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인턴 첫 월급으로 200만원(세금이 30%라 실수령액은 140만원에 불과했다)을 받은 이씨는 당시 이 회사를 빨리 성장시켜서 월급을 더 많이 받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목표했던 월급을 받게 된 순간 만족감은커녕 허무함이 느껴졌다. 은행계좌에 꽂히는 돈의 액수가 인간의 끝없는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 200만 원 벌 때는 300만 원은 벌어야지 했었고, 목표했던 월 350만 원이 되고나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예를 들어 롤렉스시계를 갖게 되면 좀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사고나면 딱 이틀정도 기분 좋았던 것과 비슷했어요. 스웨덴에 오면서 예전 물질중심의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궁극적으로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내 일'찾고 1년만에 연봉 2배, 돈보다 '삶의 질' 지향

 독일 패션트레이드쇼 참가한 이하석 대표.(왼쪽)
독일 패션트레이드쇼 참가한 이하석 대표.(왼쪽)이하석

월급쟁이로 그저그런 재미없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며 유연하게 일하는 삶을 살 것인지의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1인 기업가이자 컨설팅의 대가 앨런 웨이스(Alan Weiss)의 <밀리언달러 컨설팅>이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보면서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2015년 5월, '하세스트'라는 이름으로 본격 1인기업을 시작했다. 본업인 한국 패션 브랜드회사들의 해외 세일즈 마케팅 업무 외에 월 2회씩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담긴 리포트를 작성해 잠재고객에게 이메일 발송하고 있다. 또 지난 3월부터는 스웨덴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하는 박경태씨와 함께'스마트 비즈니스 팟캐스트'를 런칭해 방송을 통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세율이 높은 스웨덴에서의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을까. 1인기업을 시작한 지 3개월만에 직장 다니던 시절의 월급을 넘었고 1년이 좀 지난 지금은 2배 정도 된다고 말했다.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은 더 받고싶어도 클라이언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너도나도 살고싶다는 북유럽이지만 낯선 땅에서 1인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적은 기후탓에 첫 겨울에는 불면증을 심하게 겪었다. 또 비즈니스에서도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 큰 스트레스였다. 그럴 땐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한끼라도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극복하려 했다. 1년 중 최소 60일은 해외출장을 나가 최신 트렌드를 접하고 바이어를 만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잊기도 한다.

"뭐든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점이 1인기업의 가장 어려운 점인 동시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컴퓨터로 하는 일들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게 필요한 프로그램, 어플리케이션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마스터해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협업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라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파리 패션트레이드쇼 참가한 이하석 대표.
파리 패션트레이드쇼 참가한 이하석 대표.이하석

이씨는 자신의 강점으로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의 생활을 통한 문화의 이해'와 '유럽에서 한국인으로 패션 비즈니스를 전문적으로 한다는 점'을 꼽았다. 또 하나의 무기는 마케팅, 세일즈 능력뿐만 아니라 유럽 및 미국 IT회사들이 쓰는 IT 테크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강점이 있고 다른 사람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1인기업에 도전해볼 것을 적극 추천했다. 또 일단 시작했다면 처음엔 힘들더라도 자신만의 공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꾸준히 할 것, 특히 지식이나 상품을 팔아야 하는 대상에게는 본인이 갖고 있는 지식을 아끼지 말고 공유할 것을 조언했다. 고객과 친밀도를 높이면 돈과 클라이언트의 러브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사업을 확장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일을 못맡기는 것도 있지만 하세스트는 곧 이하석이기에 책임감 측면에서 현재의 방식을 고수할 예정입니다. 회사를 키워서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 맡고있는 분야에서 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물질보다 삶의 질을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일을 즐기며 오래하고 싶습니다."



[1인기업 시대 ①] 취업 못해 불안? 취업의 시대는 '끝났다'
#1인기업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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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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