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홍상수 '팔던' 보수종편, 이건희엔 왜 침묵하나

[보수종편의 맨얼굴③] '이건희 영상'에 침묵한 종편, 이들을 언론이라 부를 수 있나

등록 2016.07.26 21:03수정 2016.07.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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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 속 '섹스 동영상'의 파급효과는 일파만파였다. 영상 속 재벌 회장은 휠체어에 실려 검찰 조사를 받았고, 언론사 주필은 실형을 살았으며, 대선 후보는 몰락과 함께 잠적했다. '내부자'로 밝혀진 현직 검사는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영화는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현실 반영의 텍스트로서의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정의 같은 달달한 게 남았냐"던 전직 조폭과 경찰 출신 검사가 퍼트린 소위 정체불명의 '괴동영상'이 언론과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는 900만이 넘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언제나 영화는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특히나 '헬조선' 담론이 뒤덮은 한국이라면 더더욱.

 <뉴스타파>는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위조나 변조됐을 가능성에 대해 영상전문 대학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뉴스타파>는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위조나 변조됐을 가능성에 대해 영상전문 대학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뉴스타파> 갈무리

지난 21일 오후 10시, '이건희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미 재벌가의 조세회피 등 여러 특종을 보도한 바 있는 <뉴스타파>를 통해서였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뜨겁게 달군 것은 물론이요, 공개 직후 다음날까지 포털 검색어 1위를 '이건희'와 '뉴스타파'가 차지했으며, 몇몇 매체를 통해 후속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못해 암담하다. "<내부자들>이 현실이었구나"란 장삼이사들의 장탄식만으로 끝날 상황에 처했다. 언론 대부분이 "당혹스럽다"는 삼성 측 대응을 '받아쓰기'했으며, 일부는 '몰카 피해자 이건희'를 강조하기까지 했다. 다시금, "삼성을 생각한다"고 스스로 여기는 '삼성공화국' 내 방송들의 천국인지 되새기게 되는 풍경이다. 그 암담함을 가져온 1등 공신은 어디였을까.

'이건희 동영상' 외면한 방송, 군계일학은 역시 '종편'

우선 <내부자들>에서 동영상 파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방송사로 등장한 YTN이 대표적이다. YTN은 지난 22일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 파문…삼성 "물의 빚어 당혹"이란 삼성 측 반응을 전하는 같은 내용의 단신만 6차례 걸쳐 내보냈을 뿐이다. "경찰, '이건희 동영상' 관련 수사협조 요청"이란 단신도 2차례에 그쳤다. 이마저도 22일 이후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22일자 지상파 메인뉴스의 경우, KBS와 MBC, SBS 모두 뉴스 후반부에 보도했으나 차이가 확연했다. KBS와 MBC는 영상의 출처로 <뉴스타파>를 밝히지 않고 동영상 속 이건희 회장의 모습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SBS만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언급한 뒤 동영상 속 이건희 회장의 얼굴과 음성을 전했을 뿐이다.


군계일학은 역시나 종편이었다. 그야말로 '가관'이랄까. TV조선과 채널A는 각각 1건, MBN은 3건이었으나 대부분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돈을 노린 기획촬영"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후속보도 역시 거의 없었다. 반면, 삼성과 '특수관계'인 JTBC <뉴스룸>의 보도가 주목받은 것이야말로 '이건희 동영상'과 관련한 기울어진 언론 환경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JTBC 메인뉴스 <뉴스룸>은 2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했다.
JTBC 메인뉴스 <뉴스룸>은 2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했다.JTBC <뉴스룸> 화면 캡쳐

종편 3사는 그렇게 '이건희 동영상'을 애써 외면했다. 그들의 시선은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일례로, 종편 3사가 꺼내 든 카드 중 하나는 '연예인'이었다. 어마어마한 이건희 스캔들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TV조선과 채널A는 여성 연예인 예원의 과거 말실수나 홍상수 감독의 스캔들을 재탕하고 있었다. '연예뉴스'와 '패널토론'이란 허울 좋은 형식을 빌려서다.


'선정성'과 '자극성'을 금과옥조로 받드는 종편의 평소 보도 행태로만 본다면, 마치 '자기분열증'과 같았다고나 할까. 연장 선상에서, 스캔들을 다루는 종편 3사의 행태만 비교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JYJ의 박유천을 비롯해 연이어 터진 '연예인 관련 스캔들'에 쏟아졌던 종편들의 십자포화, 아니 '황색 장사' 말이다. 

홍상수·김민희 '팔아먹던' 보수종편, 이건희엔 왜 침묵하나

"'홍상수-김민희 불륜설'을 다루는 방식은 주제 이탈을 넘어 억지 보도의 전형을 보여줬다. 채널A <직언직설>(6/27)은 '홍상수-김민희, 입장발표 없이 침묵 중'이라는 제목의 아이템을 다뤘다. 최초 불륜설 보도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두 당사자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을 하나의 꼭지로 담아낸 것이다.

같은 프로그램(6/29)은 이틀 뒤 '김민희 매니저, 개인 SNS 탈퇴'라는 아이템을 보도하며 다시 한 번 황당한 방송을 이어갔다. 언론의 취재에 시달리던 김민희 매니저가 SNS 계정을 없앴다는 소식이 사건의 본질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다."

"시사토크쇼냐, '한낮의 TV연예'냐"는 제목의 지난 6일자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의 '[종편 시사토크쇼] 종편 3사 6월 27일~29일 아이템 분석 모니터보고서' 중 일부다. '시시콜콜'을 넘어 '억지보도'까지 등장했다는 평이다. 민언련의 모니터보고서에 따르면, 종편의 연예인 관련 보도가 그야말로 횟수나 비중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부터 지적됐던 '전파 낭비'가 더욱 극심해졌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홍상수-김민희 불륜설 직전엔 박유천이 있었다. 민언련은 지난달 18일자 모니터에선 따로 종편의 '박유천 보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TV조선의 <이슈본색>(6/15)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화장실에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여종업원이) 2차를 나갈 마음이 없었던 거 아니냐"라는 남자 종업원의 발언을 취재기자가 고스란히 전했다. 방송사들은 박유천 사건에서 성폭행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성매매 행위에 대해서는 마치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성행위를 원한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나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라는 종업원 인터뷰를 전하는 것 역시, 성매매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런 대화는 사적인 자리에서나 해야 할 수위의 이야기이다. 방송에서 '돈을 주고 2차를 나가는 성매매는 괜찮고, 화장실에서 적절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으니 성폭력일 것이다'라는 식의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이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언련의 '사건 장소 묘사부터 유흥업소 종업원 인터뷰까지, 박유천 사건에 이성 잃은 종편' 모니터 중 일부다. 이보다 더 수위 높은 발언들과 자극적인 화면들이 한낮 시사토크쇼라는 명목하에 매일 방송 중이라고 보면 맞다. 사회면에 등장한 연예인 기사라는 이유로 대놓고 아이템으로 선정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연예 뉴스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꼴이 '목불인견' 수준이다. 그런데, 종편은 왜 '이건희 동영상'엔 침묵하는가. 

보수종편과의 전쟁, 늦지 않았다

 종편 4사 로고
종편 4사 로고종편4사

종편 3사의 '이건희 동영상'에 대한 침묵과 선정적인 연예뉴스의 남발과 집착(?)은 그들의 '선택적' 프레임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며 일방향인가에 대한 반증과도 같다. 자, 만약 '이건희 동영상'이 종편 3사 토크쇼의 도마 위에 같은 잣대로 올랐다면 어땠을까.

"이건희의 화대는 왜 500만 원이었을까?", "이건희와 <내부자들>, 그 연관성은?", "성매매 장소, 삼성은 관계없다?"와 같은 주제들이 줄줄이 쏟아지고 그와 관련된 얼토당토않은 '말말말'들이 양산되지 않았을까. 이미 설명하다시피, 이건희와 삼성 앞에서 종편 3사는 침묵하는 바보상자가 돼버렸다. 광고를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이걸 이해해 주기엔, '금권'에 바짝 엎드렸던 종편 3사의 치졸함과 그간의 편향성이 먼저다.

지독히도 청와대와 여당 편향적이고 야당 헐뜯기에 혈안이 됐던 현재까지 종편의 활약(?)과 공정성(?)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편향된 시각으로 공해 수준의 '막말'들을 늘어놓는 것도 모자라 '연예인' 장사에 앞장섰던 종편3사. 자본의 힘 앞에서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는 이들을 과연 '언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손혜원입니다. 종편 보시고 문제 될 만한 패널이나 워딩, 신고해주세요. 방송사, 날짜, 시간, 인물, 그리고 내용을 이곳에 트윗 부탁합니다. 말 한마디까지 다 잡아서 고소할 생각입니다. 누구라도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은 제 문제에 한합니다." - 지난 7월 9일, 손혜원 의원 트위터

보다 못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문화관광체육부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표절 의혹을 제기했던 손혜원 의원은 지난 8일 종편 3사 등 일부 언론이 도리어 자신이 만든 침구회사의 로고에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팔을 걷고 나섰다.

민언련이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함께 벌이고 있는 '종편 때찌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보수종편 등 언론감시 활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제1야당의 홍보위원장 직책을 맡은 국회의원이 '보수종편과의 전쟁'을 선포한 격이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 늦은 게 아니다.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출범시키고, 박근혜 대통령 임기와 함께 쑥쑥 자란 보수종편의 질주를 거세시킬 때가 됐다. 비단 언론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다. 보수종편에 유독 몰리는 노년층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자라나는 10·20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그게 '공익'이다.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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