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서리가 앉은 들판특히 갈리시아 지방은 높은 산이 많아서 더욱 춥게 느껴진다
정효정
길을 걷다보면 사람들이 남겨놓은 메시지가 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로그로뇨에서 헤어졌던 한국 순례자 수영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녀가 전해준 이야기는 브라질에서 온 에릭의 러브스토리였다. 그는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겪고,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이라고 했다.
그는 첫 순례길에서 한 헝가리 여성을 만났다. 한눈에 반한 그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포옹하고 내일 다시 만나자고 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그녀와는 계속 엇갈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를 찾던 어느 날, 길 위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그녀의 메시지였다. 다음 마을에서 이틀간 머물테니 찾아오라는...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나 산티아고까지 함께 걸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 헤어졌고 에릭은 지금 새 여자친구와 이 길을 걷고 있다. 원래 원거리 연애라는 게 잘되기가 힘든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길 위에 남겨진 메시지들을 찾아봐도 나를 찾는 로맨틱한 메시지는 없었다. 대신 3일 정도 앞서 걷고 있는 다비드의 메시지는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일행들의 사진을 출력해 전봇대에 붙여놓고 크게 "현상수배! 미친 순례자들"이라고 적어 놨다. 전봇대 앞에서 나는 양팔을 허리에 얹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까 내 인생에 로맨스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