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성모상폰페라다를 떠나 만난 성모상.
정효정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지난 여행을 떠올렸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서 나이가 비슷한 영국, 독일 여성과 만났다. 싱어송 라이터인 섬세한 영국여성 조지아나와 화학자인 냉철한 독일여성 트레이시... 우리는 모두 여행을 많이 했고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보통 일, 연애, 결혼이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데이트 상대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한탄을 나누고,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털어놓았다. 이 유럽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진저리를 쳤다. 결혼을 해서 남은 일생을 보내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혼자 살기에 충분한 수입이 있고, 베를린의 친구들 대부분은 싱글이야. 1년에 한 달 있는 휴가는 내가 원하는 곳을 여행할 수 있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해.""수입은 불안정한데, 대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무엇보다 멍청하고 둔한 사람과 평생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봐. 싱글이 좋은 점은 관계에 구속되지 않아도 돼서야." 당시 우리 숙소에는 50대 영국 여행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영국에서부터 바이크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넘는 중이었다. 백발 머리를 짧게 자른 스타일리시한 그녀에게 우리는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도전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지아나가 그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고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줬다.
"사실 그녀는 공허감을 느끼고 있대."그리고 그녀는 '아마 아이가 없어서 공허한 것 같다'고 말했단다. 그녀를 동경하던 우리는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더 이상 남성만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이상, 독립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여성에게 결혼을 설득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선 판단이 흐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모두 작고 사랑스런 생명체를 보듬고 지켜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사실 남자에 대해선 그동안 겪은 바가 있기에 딱히 환상이 끼어들 틈이 없었지만, 아이는 아직 겪지 않은 미지의 세계여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트레이시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난 내가 진정 아이를 원할 때 어머니가 될 거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맘이 될래."조지아나도 말을 받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싱글맘이 되는 게 나아." 나는 잠시 문화적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유럽의 여성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구나... 그들이 내 의견을 물어보기에 간신히 대답해줬다.
"나는 그렇게 용기있고 대단한 여성은 못돼. 한국의 싱글맘을 둘러싼 환경은 너희들 나라와는 꽤 다르거든. 여성이 혼자 아이를 낳고 기른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 나도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 삶이 더 소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