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보는 얼굴들 이 친구들과 몰려 다니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더욱 없어졌다
정효정
사실은 산티아고를 100km 남긴 사리아부터는 새로운 순례자들이 영입된다고 해서 조금 기대를 하긴 했다. 사리아에서부터 걸어도 순례완료증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 달여를 걸어온 기존 순례자들과 새로운 순례자들이 어울리는 일은 잘 없었다. 일단 옷차림부터 이질감이 든다. 이쪽은 같은 옷을 한 달간 입어왔는데 뉴페이스들은 이제 막 아웃도어 잡지에서 나온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레헤(Airexe)라는 작은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묵게 되었다. 숙소에는 2층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침대를 너무 가깝게 붙여놔서 옆 침대 사람과 동침하는 모양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다. 옆에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면 정말 어색할 거 같다. 아니면 지나치게 뚱뚱해서 침대를 넘어오는 사람이면 어쩌지. 아, 제발 아는 얼굴이면 좋겠는데. 하지만 친구들은 7km를 앞서있다.
걱정을 하며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옆 침대에 누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린다. 슬쩍 보니 스페인 순례자 로베르토 아저씨다. 그는 영어를 잘 못해 많은 이야기는 못했지만 곧잘 내게 먹을 걸 권해주곤 했다. 그를 통해 처음으로 올리브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이 옆 침대에 그가 아니라 내 이상형의 남성이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지금까지로 미루어보아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잠을 청했다. 산티아고까지 이제 3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