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첫 주말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중은 지배권력과 상호작용ㆍ쟁투하면서 광장의 민주주의를 전개한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주체화ㆍ자력화(empowerment)를 통해 혁명적 군중이 된다. 2016년 촛불의 문화정치의 상당 부분은 2008년으로부터 오고 또 수정ㆍ보완된 것이라 보인다. 08년의 촛불은 혁명에 관한 상상력을 전면 개정했다. 혁명은 '전위조직+노동계급+통일전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주체성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 좀더 분명해졌다.
그런데 50만 명이 결집한 08년 6월10일 밤 명박산성을 넘으려던 시민들의 발을 붙잡은 것은 지도부의 부재가 아니라, '혁명'이 야기하는 본원적 공포, 또는 대중 스스로의 '대중에 대한 공포'와 온몸을 결박한 듯한 '준법 의식'이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의식과 광장의 정치는 자유주의나 합법주의와 함께 도래했던 것이다.
이제 80년대의 혁명론대로의 혁명이 일어나리라 믿지 않지만, 새로운 방식의 혁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어느 경우든 중요한 것은 모순적인 두 가지다. 첫째 과거로부터 직접행동과 광장 정치의 양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 둘째 그러나, 새로운 참여자들은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참여한다는 점. 16년의 새로운 참여자들은 누구인가?
촛불은 개인성ㆍ성찰성ㆍ비폭력성을 자체로 내장하고 있다. 내성성과 수동성도 내포한다. 따라서 '주최측'이 촛불을 들고 참가하고 걷는 집회ㆍ시위를 기획했다는 사실 자체가 급진성이나 폭력적 전화 가능성을 멀리한 것이다. 촛불 든 손은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대신 촛불은 다른 수단과 달리 혼자 준비할 수 있으며 어린이ㆍ장애인ㆍ노인들도 들 수 있다. 촛불은 가장 넓은 참여성과 내성적인 행동성을 모순적으로 결합한다.
오늘날 취향은 정체성 자체를 구성하고 '정치'를 운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촛불에 참가하는 동호인ㆍ마니아ㆍ덕후ㆍ팬들은 기존의 학생회나 노조 또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들이 조직하지 못하는, 네트워크와 다중의 분파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촛불 항쟁에서 그것은 깃발을 통해 표현됐다. 08년 촛불과 달리 16년의 촛불들은 다양한 깃발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ㆍ소속을 표현하였으며 더 나아가 깃발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깃발로 표현된 이 새로운 '조직'들은 대체로 두 가지 종류로 보인다.
첫째, 가상의 조직이거나 이번 정국에서 급조된 개인들의 모임.(장수풍뎅이연구회, 고산병연구회, 전국 한시적 무성욕자연합,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전국아재연합, 힝입니다ㅠ 등등.) 이런 조직 아닌 조직은 촛불의 확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동시에 이는 일반시민과 사회세계의 자연인들이 새로 정치성ㆍ조직성을 획득하기 위한 우회로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촛불의 주체는 매우 다양한, 조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학생회도 노조도 '가입율'이 현저하게 낮은 한국의 사회세계가 있다. 노조와 학생회는 이제 불필요한 구시대적 네트워크 형식인가? 촛불의 자유주의와 다양함은 광장 너머 세계에서의 정치적 연대의 취약함과 불가능함의 동전의 양면 아닌가?
둘째, 근래 새로 생겨난 소규모 공동체나 연대조직들은 이번에 오프라인에서 새롭게 연대하며 깃발을 들고 행동에 나섰다. (예: 전국청소년혁명,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박하여행, 혜화동인문학노동자, 민주팬덤연대 등) 이들은 강렬한 정체성과 운동성을 보이면서 중요한 세력이 되어 기성의 질서와 광장 민주주의의 성격 자체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행동가들로서 세상을 바꿀 것 같다.
여전히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의 헌신과 희생으로써 대규모 집회ㆍ시위는 가능하다. 이번 '판'을 만든 사람들 중에는 지치고 않고 투쟁했던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화여대 학생들 같은 존재가 있다. 또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여 희생과 위험을 감내하며 싸운 전통적인 조직 대중이 있다. 바로 민주노총과 백남기 선생의 전농이다. 그런데 왜 대학생ㆍ청소년이나 '혼참러들'보다 노동자들의 대오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노총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언론이나 노동자들의 구호를 불편해 하는 시민들은 아직 다수다.
두 가지 지양이 필요하다. 한편 절박한 싸움의 과정에서 고안되고 발전해온 질박하고 민중지향적인 조직운동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노동자 집회 문화와 노동운동 문화의 어떤 측면들도 성찰과 개혁을 필요로 한다. '운동권 혐오' '80년대 혐오'가 세대를 가로지르고 있을 뿐 아니라, 미소지니 문제를 비롯한 광장의 행방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야만 광장의 저변과 지역에서 헌신하는 민주노총ㆍ전농의 선도성과 광장 민주주의 중앙무대에서의 소외라는 비대칭은 해소될 것이다.
비폭력ㆍ합법주의의 문제와 촛불의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