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학익진' 포위작전지난해 11월 21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일대 도로에서 열렸다. 오후 9시가 되자 일제히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매일 감동의 연속은 아니었다. 하루는 출근 하자마자 공용 핸드폰의 진동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목소리의 감이 멀었다.
"김제동이 이 빨갱이 쉐이~""선조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났는데 젊은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재미교포 할머니의 험담이었다. "북한을 지지하고, 그들의 결정 없이는 우리 정책을 정하지도 못하는 게 빨갱이가 아니고 뭐냐"며 따졌다. 그분이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을 설명해드리며 15분간의 전화를 끝냈는데, 나는 이런 말에 쉽게 흥분해서 도발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차분하게 대처하는 내가 놀라웠을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빨갱이 언론'이라며 따지는 분들도 있었다. 특히 "촛불집회에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고비를 받고 그 자리를 채운다"는 황당한 말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를 절대적인 사실인 양 믿고 계신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하고 끊었다. 그중 한 분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선생님, 제가 직접 가봤지만 저한테는 돈 안 주더라고요."자기와 다른 말을 하면 무조건 빨갱이와 종북으로 쏘아붙이는 잘못된 풍토. 이런 것이 지역감정, 세대갈등, 빈부갈등을 낳았는데, 10만인클럽에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국민을 이분화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극단적인 방법들이다.
썩은 것을 도려내면하지만 나는 보았다.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국민들은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함께 외쳤다. 정상의 비정상화가 정상이었던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은 '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비폭력 촛불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심판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드높은 정신을 담기에는 대한민국이 너무 좁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 나는 병실에 누워있다. 그동안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지냈는데 엉덩이에 혹이 생겼다. 치질이다. 서걱거리는 메스 소리를 들으며 다섯 개의 혹을 제거했다. 오랫동안 내 몸속에 쌓여온 '나쁜 놈'들을 떼어냈더니, 속이 시원했다. 떼어낸 자리를 불로 지졌다. 2주 뒤 상처가 아물면 나는 20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남아공으로 간다.
2016년 끝자락과 2017년 초입 대한민국을 달군 촛불. 그 끝도 나와 같이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뜨거운 겨울의 끝에서 찬란한 꽃이 피어날 것이다. 얼마 전 지나치며 본 <낭만닥터 김사부>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옳고 그름의 문제지."
*마지막으로 내가 7주 동안 받았던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공용핸드폰 전화 번호는 010-3270-3828이다. 나의 아르바이트 기간은 이제 끝이 나지만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옳은 언론을 희망한다면 꼭 전화 주시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공유하기
'빨갱이' 소리와 칭찬 동시에 듣는 '꿈의 알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