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판자촌'과 '초원복집', 그 명백한 차이

[헌법 쉽게 읽기①] '주거의 자유'에 관한 두 개의 사례

등록 2017.02.13 10:11수정 2017.03.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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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서초구 매헌로 16길 40. 양재리본타워가 위치한 일대에는 원래 '잔디마을'이라 불리던 판자촌이 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강남구 양재대로 478일대에는 아직도 '구룡마을'이라는 판자촌이 있다. 하지만 구룡마을 역시 2020년까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주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강남구청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 2015년 2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하자 건물이 무너져내린 자리에 주저앉은 한 주민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강남구청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 2015년 2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하자 건물이 무너져내린 자리에 주저앉은 한 주민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이희훈

한국은 1980년대에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 스포츠행사를 연이어 개최했다. 1984년 5월경 거대 스포츠행사를 연이어 준비하던 정부는 도시미관에 해가 된다며 서울의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판잣집이긴 해도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판자촌은 불도저에 힘없이 밀려 나갔고 몇몇 곳에서는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재 뒤에는 곧바로 철거가 뒤따랐다.

이주 대책도 없는 철거작전에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도시 빈민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변두리였던 강남 일대에 모여들어 버려진 농가를 개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생활하기 시작했다. 강남의 고층빌딩 속 판자촌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강남의 판자촌에도 1980년대 후반엔 전기가 들어왔고 2000년대 초에는 수도도 들어왔다. 하지만 주소(지번)는 들어오지 않았다. 강남의 땅값이 오르면서 이들 판자촌도 개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개발은 지지부진했는데 판자촌 주민들의 이주와 보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부는 토지주도 아니고 토지주와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도 아닌 판자촌 주민들을 무단 점거자 정도로 생각했고 그들에 대한 보상을 꺼렸다. 이들이 주소를 이전하여 법률상 주민이 된다면 보상절차에 더 큰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 우려했던 것이다.

주소를 가질 수 없었던 주민들은 다른 곳에 사는 친척들 주소에 서류상 더부살이를 해야 했고, 아이들은 바로 옆에 학교를 두고도 먼 친척집 인근 학교에 다녀야 했다. 주소이전 신청이 계속 반려되자 주민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은 관계 당국과 달랐다. 전입신고를 받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의 심사 대상은 실제로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일 뿐 부동산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주민등록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십수 년 동안 주소를 가지지 못했던 주민들은 대법원의 문까지 두드려서야 겨우 그것을 가질 수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주거침임죄' 판결


1992년 12월 11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부산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하나둘씩 '초원복집'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며,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인물들은 전 법무부 장관, 부산직할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부산직할시 교육감,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등 당시 부산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중 전 법무부 장관은 불과 두 달 전 퇴임한 자로 당시 최고의 실세였는데, 그로부터 25년 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며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기춘이었다.

 1992년 12월 21일, '부산 기관장 모임' 고발 사건과 관련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두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1992년 12월 21일, '부산 기관장 모임' 고발 사건과 관련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두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고 정주영씨가 창당하고 직접 대선후보로 나섰던 통일국민당이 이 모임에 대한 사전첩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임 하루 전 초원복집에 들어가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이로써 모임에서 나눈 대화는 세상에 낱낱이 공개되었다. 대선정국에 부산의 거물급 인사들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는데 이들이 불법선거운동을 도모했다는 사실은 대선정국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는 결국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검찰은 오히려 도청장치를 설치한 통일국민당 인사를 주거(건조물)침입죄로 기소했다. 그리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식당에 손님으로 출입했다지만, 만약 식당 주인이 도청장치가 설치될 것을 알았다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주거침입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주거침입죄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이다. 그런데 도청장치의 설치는 초원복집의 평온은 전혀 깨뜨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식당 주인의 가정적 의사까지 고려해 주거침입의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단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치적 판결이라는 논란 속에 있다.

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며 주거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주거는 그 형태나 적법유무를 따지지 않는다. 비닐하우스든 판잣집이든 심지어 텐트라 하더라도 주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주거로 인정된다. 벽과 지붕 등 주거의 구조적 완결성 또한 따지지 않는다. 단지 점유하고 있고, 그곳이 자기 공간이라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면 주거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거대 스포츠행사를 위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살던 곳에서 쫓겨나 강남 일대에 모여 살았던 빈민들은, 땅도 없이 무허가건물을 짓고 산다는 이유로 십여 년 동안이나 법적으로 주민이 될 수 없었다.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면 응당 있어야 할 '보상 대상'에서 제외시키기 위함이었다. 반면 초원복집 사건에서는 식당 주인의 주거의 자유가 전혀 침해되지 않았는데도 검찰은 기소하였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주거의 자유'는 공평하게 보장되는가?

인간의 기본권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생존의 필수요건인 의식주와 연관된 기본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강남의 판자촌과 초원복집 사건을 보면 사람에 따라 기본권 또한 달라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초원복집 사건에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인정된 주거의 자유가 판잣집 주민들에게는 십수년동안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아직도 재개발과 그에 따른 철거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 많다. 지난 2월 3일 대법원은 구룡마을 개발과 관련하여 주민들이 강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강남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구룡마을의 철거도 속도가 붙을 것이다. 주거는 단지 한 몸 누일 곳만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어느 곳에 사는지도 주거의 문제이며 이는 누구와 함께 사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몇 년 후면 구룡마을 일대에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것이다. 판잣집이긴 해도 이웃을 만들고 살아왔던 구룡마을 주민들의 공동체는 사라질 것이다. 주거의 자유를 쉽게 침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주거를 개인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 역시 문제다. 마을을 주거의 연장 선상에서 보았다면 판잣집 주민들의 주소이전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을 테니.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거의 자유 #김기춘 #구룡마을 #철거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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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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