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청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 2015년 2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하자 건물이 무너져내린 자리에 주저앉은 한 주민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희훈
한국은 1980년대에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 스포츠행사를 연이어 개최했다. 1984년 5월경 거대 스포츠행사를 연이어 준비하던 정부는 도시미관에 해가 된다며 서울의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판잣집이긴 해도 소중한 보금자리였던 판자촌은 불도저에 힘없이 밀려 나갔고 몇몇 곳에서는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재 뒤에는 곧바로 철거가 뒤따랐다.
이주 대책도 없는 철거작전에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도시 빈민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변두리였던 강남 일대에 모여들어 버려진 농가를 개조하거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생활하기 시작했다. 강남의 고층빌딩 속 판자촌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강남의 판자촌에도 1980년대 후반엔 전기가 들어왔고 2000년대 초에는 수도도 들어왔다. 하지만 주소(지번)는 들어오지 않았다. 강남의 땅값이 오르면서 이들 판자촌도 개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개발은 지지부진했는데 판자촌 주민들의 이주와 보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부는 토지주도 아니고 토지주와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도 아닌 판자촌 주민들을 무단 점거자 정도로 생각했고 그들에 대한 보상을 꺼렸다. 이들이 주소를 이전하여 법률상 주민이 된다면 보상절차에 더 큰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 우려했던 것이다.
주소를 가질 수 없었던 주민들은 다른 곳에 사는 친척들 주소에 서류상 더부살이를 해야 했고, 아이들은 바로 옆에 학교를 두고도 먼 친척집 인근 학교에 다녀야 했다. 주소이전 신청이 계속 반려되자 주민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은 관계 당국과 달랐다. 전입신고를 받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의 심사 대상은 실제로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일 뿐 부동산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주민등록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십수 년 동안 주소를 가지지 못했던 주민들은 대법원의 문까지 두드려서야 겨우 그것을 가질 수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주거침임죄' 판결
1992년 12월 11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부산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하나둘씩 '초원복집'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며,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인물들은 전 법무부 장관, 부산직할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부산직할시 교육감,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상공회의소장 등 당시 부산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중 전 법무부 장관은 불과 두 달 전 퇴임한 자로 당시 최고의 실세였는데, 그로부터 25년 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며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기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