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반대자들 "사회자를 교체하라"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상임이사가 서울시민인권헌장(안)공청회를 앞둔 2014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특별시청 후생관에서 발언을 하려고 하자 한 인권헌장 반대 시민이 마이크를 뺏으려 하고 있다. 반대 입장의 시민들은 "박래군 상임이사는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다"며 "공청회 사회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희훈
2005년 11월 농민들의 여의도 시위 당시에 경찰기동대는 폭력적으로 진압에 나섰고, 농민 전용철씨 등 2명이 사망했습니다. 처음 경찰은 전씨가 지병을 앓다 죽은 것으로 몰아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인권활동가들을 모아서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전씨의 주거지인 충남 보령에도 내려가고 자료도 분석하면서 전씨가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사망했음을 밝혔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는 사진이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사과하고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그때까지 거의 한 달 동안을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을 해냈습니다.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도, 2009년 용산참사 현장과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에서도,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에도 인권활동가들은 온몸을 던져 그들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인권활동가들에게 있는 무기라고는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문서에 나온 인권의 약속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차별받으면 안 된다…. 현실은 이런 인권의 약속들을 쉽게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문서로, 때로는 몸으로…. 집회와 시위, 단식과 농성으로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앞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게 인권운동이었습니다. 저는 2000년대 이후 매년 겨울이면 명동성당 앞에서, 국회 앞에서, 또는 어느 광장의 한쪽에서 텐트도 못 치고 단식농성을 하던 인권활동가들을 기억합니다.
'매 맞고 쫓겨나 우는' 곳에서 함께
대부분의 인권활동가들은 이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고문당한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할 때 용기 있게 말하고, 의문사 당한 사람들의 의문을 밝히라고 행동하고,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불법 거리 농성에 연대했다가 연행되기를 반복하고, 성소수자들이 받는 모욕에 항의하면서 성소수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난민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감옥에 간 범죄자들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욕설전화를 받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한 농성투쟁을 함께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도 훨씬 적은 활동비에 만족해야 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저는 인권활동가라고 부릅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은 주로 '매 맞고 쫓겨나 우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대부분 모욕과 혐오, 폭력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존엄성은 찾아볼 길 없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입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보편의 목소리로 바꾸는 것, 그들에게 지지와 응원의 힘을 조직하는 일, 그것은 인권활동가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처뿐인 절망', 현장 떠나는 인권활동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