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내책방

[재밌다고 소문난 책방일기] 이후북스 인턴에게

등록 2017.08.20 15:18수정 2017.09.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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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이내책방 이내책방은 금요일 부산 어딘가에서 열립니다.
금요일엔 이내책방이내책방은 금요일 부산 어딘가에서 열립니다. 황남희

이내 님이 이후북스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매일 그녀의 책을 팔고 있고 매일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부산과 서울의 거리로 매일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아쉬움이었으니까.

하지만 책방에 인턴이라니, 이후북스는 인턴을 둘 처지가 아니다. 최소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못 할뿐더러 무언가 배울 만한 게 없으니까. 그녀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후북스 놀러 가는 거지, 라고 생각했길 바랐다. 다만 그녀는 까다로운 것과는 결이 다른, 어떤 현상을 관통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서 책방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 좀 걱정스러웠다. 책방의 바닥은 나의 바닥이기도 하니까.


길위의 음악가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로 활동하며 전국의 작은 책방과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
길위의 음악가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로 활동하며 전국의 작은 책방과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황남희

나는 멋대로 운영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책방이 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멋대로 살았지만 좀 잘 살고 싶었던 것처럼. 좋은 책을 읽으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책방지기가 되었나? 현저히 책을 읽지 못하고 있지만.

평소 힘 빼고 책방을 운영했는데, 그녀가 인턴으로 온다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머리카락에, 손끝과 발가락 사이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안 주던 곳까지 힘을 주니 평소보다 더 빨리 피로가 찾아왔다. 그랬던 것 같다. 아닐 수도 있다. 책방에 혼자 있을 땐 종종 낮잠을 잤는데 못 자서 일지도 모른다. 난 잠이 부족하면 정말 피곤해지는 타입이다.

이후북스 인턴 생활 중   이후북스에서 열흘간 인턴으로 머물며 고양이 로르카와 노래를 하고 있다
이후북스 인턴 생활 중 이후북스에서 열흘간 인턴으로 머물며 고양이 로르카와 노래를 하고 있다황남희

아, 인턴에 대해서 말을 해야지. 그녀와 어떻게 친해지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말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지?' 나도 매번 생각해본다. 그건 미바 때문이다. 미바는 <다시 봄 그리고 벤>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든 창작자이자 어디선가 우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에 어미새로 불린다.

미바가 그녀에게 이후북스를 소개해줬다. 누군가의 얘기를 흘려듣지 못하는 그녀는 이내 이후북스에 오게 되었고 난 책과 음반을 팔게 되었다. 그리고 1주년 때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난 그녀의 노래가 겨울에 덮는 이불처럼 감싸주는 느낌이 무척 좋았고, 그녀의 책이 봄볕처럼 따스해서 무척 좋았고, 그녀의 공연이 정말로 목욕탕 같아서 무척 좋았다. 이 과정을 구구절절 얘기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나는 '그냥 다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진짜로, 인턴에 대해 말을 해야지.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인턴에 대해서.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고 빨리 먹는 인턴. 하지만 밥도 많이 먹고 빨리 먹으면서 말도 많이 하는 인턴. 그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인턴을 보니 부러워졌다. 난 말을 많이 하면 덜 먹게 될까 두려운 거지근성이 있는데 인턴을 보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수요일에 지방 공연을 하고 왔다. 와서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자신의 노래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들과 관객의 입장에 눈을 뜰 준비가 되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았던 공연을 생각하며, 잊을 만하면 한숨을 쉬었다. "맺지 못한 작은 점들이 떠오른다. 한 번에 하나씩, 한 숨에 한 걸음. 한 번에 하나씩, 두 숨에 두 걸음" 본인이 지은 노래 <만년필>의 가사처럼. 자신의 노래를 그런 식으로 들려주는 건 이미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턴은 요즘 매일 일기를 쓴다. 의자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들고 다리를 쭉 뻗어, 나 보란 듯이 긴 다리를 자랑하며. 또는 소파에 드러누워 내 에코백에 다리를 올리고서는 역시 핸드폰을 이용해서 뚝딱뚝딱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 일기를 다 쓰면 내게 말해준다. 난 인턴이 쓴 일기를 제일 먼저 읽고는 생각한다. '이런 사기 캐릭터!'


그녀는 내가 오른쪽 코닦지를 다 파고 이제 막 왼쪽 코닦지를 파려고 하는 그 짧은 순간에, 대단히 좋은 사유들을 문장으로 쏟아낸다(난 이 일기를 쓰는데 적어도 하루는 걸릴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좋은 글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쓰냐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한 번에 한 숨을 내뱉을 때 이미 한 문장씩 쓰고 있다는 걸 안다.

이내책방  이후북스에 마련된 이내책방. 친구들의 책을 팔고 있다.
이내책방 이후북스에 마련된 이내책방. 친구들의 책을 팔고 있다.황남희

금요일엔이내책방  이내책방은 어디에서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이다.
금요일엔이내책방 이내책방은 어디에서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이다.황남희

그녀는 <금요일엔이내책방>이라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을 금요일마다 꾸리고 있다. 주 거처인 부산에 있었고 최근엔 인턴 생활로 이후북스에 있었다. 그녀의 책과 친구들이 만든 책을 팔고 있다. 그녀가 책방이니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책방이다. 이후북스라는 공간에 묶여있는 나는 <금요일엔이내책방>이 참으로 부럽다.

공간 없이도 공간이 되고 책 없이도 책을 전달해주는 건 손에 무언가를 쥐어야만 가졌다는 느낌이 드는 마음 반대편에 있다. 일찍이 주먹을 펴야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와호장룡에서 리무바이 사부가 말하였는데 그 실천이 아니겠는가. 나도 주먹에 힘을 빼고 싶다. (주먹에 쥔 것도 없지만) 어쨌거나 계속, 인턴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다.

 이내 에세이와 3집 앨범 에세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3집 <되고 싶은 노래> 이후북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내 에세이와 3집 앨범에세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3집 <되고 싶은 노래> 이후북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황남희

그녀는 계속 공연을 한다. 오늘(18일)도 공릉동에 있는 독립책방 지구불시착 사장님의 부름을 받고 공릉도서관으로 갔다. 길 위의 음악가, 어디서나 동네가수, 할머니 포크가수가 되길 바라며 최근엔 스스로가 책방이라고 말하는 그녀.

욕심이 없는 듯 많고, 많은 듯 없는, 이후북스 인턴이자 전속 가수가 '마음을 다해 대충' 노래를 부르고 왔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는 뭐든 마음을 다해 대충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철학이 실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121p.

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는 현시점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찾아버리는 사람이지, 시간이 없어서 대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 주문은 이거다.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지금 여기,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우리, 함께" -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 '지금, 여기' 중에서

나는 책방이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건 내가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채우려 든다. 지금, 여기 빈 서가에 책을 꽂듯이. 그게 꼭 나는 아니겠지만 그게 꼭 내가 아니라는 법 또한 없으니까. 하지만 비우는 것이 먼저다. 언제나 빈 서가가 있어야 한다. 난 서가 한켠을 비워두는 사람이고 그게 이후북스의 유일한 영업비밀이다. 이건 인턴에게 하는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인턴 기간이 끝나간다. 벌써 그립구나. 그리운 건 마음을 다해 그리워해야지.
덧붙이는 글 길 위의 가수 이내님은 8월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이후북스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이내책방 #이후북스 #인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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