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아직은 엄마, 아빠가 세계의 전부다. 아직까지는
이희동
내가 부모님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때였다. 아버지는 예전만큼 나를 사뿐히 들어 올리지 못하셨고, 밤마다 해주시는 옛날이야기는 엉망이었다. 어렸을 때는 '똥' 이야기만 나와도 재미있었는데, 초등학생에게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너무 비논리적이었고, 구간 반복이었다.
어머니 역시도 달라지셨다. 어머니는 나의 질문에 대해 곧장 대답하시기보다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물론 내게 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제야 난 어머니가 세상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머니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음을, 어머니가 틀릴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충격이었다. 나의 절대적인 부모님이 사라지다니. 게다가 그 자리에 서 계신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오히려 자기 자식에게 한없이 약한 이가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이제 나는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
이후 나의 성장은 자아와의 투쟁이었다. 부모님이 절대적이지 않다면 절대적인 그 무엇을 찾고 싶었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세상에 나 혼자라면 너무 외롭지 않은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종교도 열심히 다녔다. 선생님들과 치기 어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딱히 답은 없었다.
다만 달라진 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였다. 난 더 이상 부모님의 말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당신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정확하게 나의 생각을 말했다. 부모님이 더 이상 나의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말씀드렸고, 다행히 부모님은 그런 나를 존중해주셨다. 대학을 선택하고 직장을 찾고 결혼을 할 때에도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어차피 당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자식이니만큼 단지 믿고 응원해 주실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언제 어떻게 독립시킬 수 있을까? 녀석들은 언제쯤 아빠와 같은 편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딸이 정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