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연표강리도 수록
Voyages in World History
도표 중에서 동아시아 부분(푸른 횡선)에 주목해 봅니다. 범위를 더욱 좁혀서 1350~1450년(100년 기간)에 집중합니다. 세 가지 사건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1368 명나라가 건국되다
1402 한국에서 강리도가 그려지다
1405-1433 정화 항해강리도 제작을 명나라 건국과 정화 대항해와 병치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강리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요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400년대 제작된 첨단 지도. 1400년 경 한국의 지도 제작자가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몽골 통치하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문화 교류 덕분에 많은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중략)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도는 결함이 많다. 지나치게 한국은 크고, 아프리카는 작으며, 인도는 함몰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지도는 유라시아 전체를 그린 최초 지도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 세계와 유럽을 포괄하고 있는 이 지도는 몽골의 유라시아 통일이 지리 지식의 극적인 증가를 가져왔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문헌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생각해 봅니다.
1350~1450년의 100년 기간 중에는 조선 왕조 창건(1392), 한글 반포(1446)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연표는 조선 창업 및 한글 반포는 싣지 않으면서 강리도는 기록하고 있을까요? 세계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사 속에서는 강리도의 사료적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줄여 부르고 있는 강리도의 원 제목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길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역대국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빼고 지도 이름을 줄여 보면 혼일강리지도→혼일강리도→혼일도가 됩니다. '혼일'이 핵심입니다. 땅을 혼융하여 하나로 합쳤다는 뜻입니다. 이 두 글자에 정수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몽골 세계제국의 독특한 세계관이자 이데올로기입니다.
그 내역을 풀어 보면, 중화 세계와 비중화 세계,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방, 동서남북, 상하좌우, 종교의 차이 등 그 모든 경계를 허물고 흔들어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 세계상을 담은 지도가 바로 혼일강리도입니다. 이 점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왜 강리도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지를 알게 됩니다. 혼일 강리도는 우리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세상의 묵시록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리도 이름에 담긴 뜻강리도상에서 224개의 서역 지명을 해독(추정 포함)한 스기야마(교토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나라 시기의 문헌 기록을 살피다 보면 금방 이 시대의 독특한 용어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바로 '혼일'이라는 단어이다. '혼연일체'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혼연일체'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걸 가장 확연히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지도이다.
역사상 유일한 것으로서, 일찍이 조선 초 1402년, 조선반도에서 원나라 시대의 두 '원도'에 기초하여 제작한 지도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출현한 '세계지도'라 할 수 있는 이 지도의 이름은 '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전적으로 중국과 조선 본위의 관점에 의한 것이어서 중화 지역과 조선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도의 제목 중에 '역대국도'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것은 원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왕조의 수도가 기록되어 있어서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중화지역에 자세히 기재된 지명들은 모두 원나라 때에 통용된 '로, 부, 주, 현' 등의 행정지명과 일치한다. 이로 보아 이 지도는 원나라 당시의 '현세지도'에 과거 왕조의 수도를 첨가한 지도인 것이다.
지도 전체를 살펴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즉, 여기에 담긴 지역 범위가 중화와 조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으로는 몽골 고원 및 만주으로부터 남으로는 동남아와 인도양, 서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에 이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유럽 대륙의 끝까지 펼쳐져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지도는 오류가 많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은 저 동, 남, 서 세 방향의 바다로 둘러싸인 땅의 모습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라는 점이다.
지도 명칭의 첫 머리 '혼일강리'는 '혼연일체의 강역'을 뜻한다. 도대체 무슨 '혼연일체'란 말인가? 이 지도의 초광역 영역이 보여주듯이 그 함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중화와 비중화 지역의 혼합이다. '혼일'은 우리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계'라는 말과 개념이 비슷하다. 이러한 세계상을 이루어 냈던 주인공은 당연히 몽골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몽골 시대 유라시아 지역까지 확대된 거대한 공간을 나타낸 그림일 뿐 아니라 지나간 역사의 유구한 시간을 농축하여 놓은 역사문헌인 것이다." - 스기야마 <モンゴルが世界史を覆す(몽골이 세계사를 전복하다)>의 중국어 번역본<蒙古 顚覆 世界史>126~130쪽 요약
강리도가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한다고 말하면 좀 과장스럽게 들리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특히 서양에서 두드러집니다. 근래에 서양에서 출판된 세계사류의 많은 저서들이 강리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구글 검색 결과, 최근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 역사 탐험 (Voyages in World History) / 2016
- 캠브리지 세계사 제 5권 (Cambridge World History) / 2015
- 세계 지도: 열 개의 세계역사 주요 문헌 (독일어, Weltkarten - Weltbilder: Zehn Schlüsseldokumente der Globalgeschichte) / 2015
- 100개의 자료로 본 세계 역사 (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 ) / 2014
- 위대한 지도들 (Great Maps ) / 2014
- 12개의 지도로 본 세계사 (A History of the World in 12 Maps) / 2013하지만 우리가 강리도의 진면목과 가치를 체감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이나 책자에서 보는 강리도는 매우 축소된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고작해야 실물의 100분의 5 정도입니다. 그걸로는 이 진보(珍寶)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지도 실물을 자세히 보게 될 때 비로소 예기치 못한 진경(眞景)이 드러나지요. 여기 몇 대목을 불러 오겠습니다.
먼저 황하의 수원.
축소된 이미지만 보아서는 아래와 같은 그림이 숨어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겠지요. 한 마리 거대한 황룡이 조선의 비단 바탕 위에서 생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