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집주인 어르신이 이사 가시고 난 집. 달력과 시계를 두고 가셨다. 2017년 10월에 멈춰 있는 저 달력은 몇 달 동안 텅 빈 집 저 자리에 걸려 있었다.
황우섭
아파트를 구할 때 전 집주인을 몇 번 만날까. 그동안의 내 경험으로는 계약서 쓸 때 딱 한 번씩 만난다. 거래를 위한 대부분의 소통은 부동산 사무실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집은 달랐다. 집 밖에서 집의 위치와 겉모습을 몇 차례 살펴본 뒤 내부를 보고 싶다고 부동산 사장님께 연락을 했다. 집주인으로부터 '정말 거래할 의사가 있느냐'는 연락이 전해졌다.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그럴 생각'이라고 답을 했다. 그제야 겨우 대문이 열렸다.
칠순을 넘은 어르신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쪽마루에 신문지를 깔아주시며 코카콜라 캔을 내미셨다.
"탄산음료는 잘 안 마시는..."사양의 말을 꺼내려는 순간, 부동산 사장님이 어깨를 '툭' 치셨다. 오기 전에 들은 충고가 떠올랐다.
"다른 양반한테 들었는데, 그 집 어르신이 다른 부동산에서 더 비싼 값에 팔아주겠다고 연락 받고 고민 중이시래요. 가셔서 어쨌든 어르신 맘에 들게 잘 하세요." 집 사고파는데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이랬다. 아파트는 지역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공유된다. 단독주택은 여러 군데 내놓으면 서로 빨리 팔기 위해 부동산에서 아무래도 집값을 깎으려 든다. 매물의 시세가 정확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처음 집을 내놓을 때는 한 군데만 내놓고, 거래가 급할 때만 여러 군데 내놓는다. 동네 자체가 들고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빌라나 원룸 전월세 거래는 많아도 오래된 집 매매 거래는 많지 않다. 이 집 주인 어르신은 급할 게 없었다. 다만 나이 들어 이 집을 건사하며 살기가 번거롭고 귀찮아 팔고 나가고 싶을 뿐이셨다. 집 살 사람이 맘에 안 들면? 안 팔면 그만이었다.
'세상에 그런 거래가 어디 있담?'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나는 어쨌거나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공연한 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다. 아차, 싶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코카콜라를 처음 마시는 것처럼 달게 마셨다. "어디 사는 뉘시냐"는 질문을 받은 것은 매우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 반 가까이 가야 하는 지역이고, 나이 들어서는 서울에서 살다 직장 따라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한 뒤 3~4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노라는 이야기를 술술술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어르신 눈에 나는 뜨내기였다. 본인으로 말씀하시자면 종로에서 태어나 종로에서 자라 종로에서 나이든, 평생 종로구민이셨다.
"도시가스는 문제 없나요? 방범은 잘 되나요? 쓰레기 수거는 어떻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답은 하나로 일관됐다. 여기는 대한민국 1번지 종로, 총리 공관이 있는 종로, 제일 안전한 종로, 좋다는 건 무조건 제일 먼저 오는 종로. 살기 좋은 종로. 누구라도 한 번 들어오면 절대 안 나가는 종로. 거기에 더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종로라는 첨언도 잊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