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둥과 주초는 풍상을 견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말해준다. 이 나무와 돌이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건 바람과 햇빛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과 비, 서리와 냉기도 맞아야 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집은 80여 년 전에도, 오늘도, 앞으로 100년 후에도 집으로 서 있게 될 것이다.
황우섭
이 지붕의 기와를 타고 흐르는 선은 매우 고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힘에 밀려 낡고 허물어지고는 있을지언정 이 집을 처음 짓는 이들은 매우 정성을 다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주춧돌의 반듯함도 그렇고, 창호의 규칙성도 그랬다.
서울시 한옥 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이 집의 기둥과 주춧돌, 기본 구조를 존중해야 한다. 오래전, 지어진 그대로의 집의 원형을 존중하고, 거기에 덧대 벽체와 지붕, 내부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니, 세월의 힘으로 낡고 부서진 것들은 다시 고치면 될 것이고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감춰진 것들이 더 중요했다.
이 집의 장점은 또 있었다. 한옥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오래된 단독주택들은 옆집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일이 많았다. 담 하나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고, 심하면 지붕이 서로 포개지는 일도 있다. 골목 안에 있는 집일수록, 작은 집일수록 더 그랬다. 집들이 처음 지어질 때는 서로 가까운 이웃이었을 테니 사이좋게 나눠 쓰기로 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들도 바뀌고 그렇게 '서로 좋은 게 좋은' 걸로 안 되는 세상이 된 뒤로는 이런 문제는 매우 민감한 분쟁의 소지가 되기 일쑤라고들 했다.
대문 쪽은 길가에 접하고, 나머지 세 면이 이웃과 매우 가깝게 붙어 있는 이 집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좁긴 하지만 옆집과의 경계가 매우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대문 앞으로 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주차 공간이 없다는 것이 역시 핸디캡이라면 핸디캡이었다.
내가 집주인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생님은 여기저기 꼼꼼하게 세밀하게 한참을 살피셨다. 슬쩍 곁눈질해보니 선생님의 표정이 좋았다.
나는 봐도 모르는 부분을 세밀하게 살피신 '전문가'의 진단까지 받고 나자 집은 마냥 복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자리에서 마음을 정했다. 그 집을 나와 부동산 사무실에 들러 계약서를 쓰기 전 가계약금 일부를 송금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정식 계약서를 쓰자고 했지만,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일이 지나치게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계약서는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다. 큰 돈이 오가는 일에는 당연히 은행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야만 이 집이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여러 상황을 살피는 며칠새.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수십 번 계산기를 두드려도, 변수가 너무 많아 어디 한군데에서 어긋나면 큰일이었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이 집이 몇 번이나 꿈에 나왔다.
마음은 이미 풍선처럼 부풀 만큼 부풀어 있었다. 여기에서 이 집을 놓치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인생 최대의 모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무척 겁이 났지만,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했다.
"계약서 쓰러 언제 갈까요?"부동산 사무실 사장님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가계약금 걸고 간 뒤 예전에 집 보고 간 사람이 다시 와서 사고 싶다고 했다고, 그 이후에도 몇 사람이 와서 보고 갔다고, 가계약금 물어줄 테니 자신들과 계약하자고 조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나의 결정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극찬을 거듭하셨다.
당장 눈앞에 닥친 계약금과 중도금과 잔금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로 머리가 복잡해진 나로서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잘한 거야, 정말 잘한 거야.'이렇게 나도 몇 번이나 되뇌였다. 도장을 찍기 전 함께 집을 보러 다닌 친구에게 양해를 구한 것은 물론이었다. 같이 뭔가를 도모하기로 했는데, 마치 혼자만 빠진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럴 거 없어. 어차피 엄두가 안 나서 당장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하긴 나 역시도 이렇게 급물살을 탈 줄 미처 몰랐던 일이니까. 계약서 도장을 찍은 날, 이 친구와 혜화동 로터리 인근 유명한 칼국수집에서 칼국수와 불고기를 사먹었다. 이 집과의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이 이 친구였으니 그 첫 순간을 함께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날은 무척 더웠다. 밥 먹고 차를 마시는 내내 내 목소리 톤은 자꾸만 높아만 갔다. 여전히 얼떨떨한 채로 도장 찍힌 계약서를 몇 번이나 들여다 봤다. 보고 또 봐도 그저 좋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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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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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방바닥, 기울어진 지붕에도 "이런 집을 어디서 구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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