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길할머니와 가장 자주 마주치고 종종 대화도 나누는 마을 지름길
김진회
얼마 전 밭에 가는 길에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밭에 뭘 심었냐고 물으시기에 그냥 우리 먹을 거나 이것저것 조금씩 심었다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러고 있지!""예?"너무 뜻밖의 말씀이라 처음엔 정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동네 토박이 주민들과 이야기 나눌 일이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집과 밭이 멀어서다. 밭이 있는 고음실마을에 집을 구해 살았더라면 아마 할머니들도 매일 마주치고 집 마당에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사는 집은 밭에서 2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데다 군부대 앞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있는 거리에 있다. 지나가다가도 마당이 훤히 보이는 열려있는 시골 농가 주택이 가까운 곳엔 하나도 없다.
게다가 우리 밭은 골짜기 제일 안쪽에 있다. 동네 가운데 즈음에 있는 밭이라면 사람들이 오며 가며 말도 많이 걸었을 법한데, 맨 끝에 있는 밭에서 조용히 일하니 거기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갈 때나 지나는 곳이다.
짝꿍이 학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할머니 댁 김장을 도우러 갔던 지난 11월에 처음으로 인사를 넘어선 대화를 나누었다. 12월엔 계추라고 하는 마을 전체회의에 가서 드디어 우리 부부를 소개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동네에 집이나 땅을 산 것도 아니고, 옆 동네 원룸에 살면서 골짜기 끝 밭에만 왔다 갔다 하는 우리가 마을 분들이 느끼기에는 베일에 싸인 존재일 것이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할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됐다. 일단 우리가 평일 낮에 어슬렁거리며 밭에 다니는 걸 보셨으니 둘 다 주 5일제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아셨을 거다. 그렇다면 농사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데,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오신 그분들은 척 보면 우리 밭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아신다.
사실 여기선 우리가 감히 '농사를 짓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집에 돈이 많은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으리라. 나로서는 차가 없어 자전거 타고 다니고, 집도 땅도 없어 월세 내고 원룸에 사는 우리가 그런 오해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돈 많은 사람이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오해는 있지만 그렇다고 우릴 안 좋게 보시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냥 예쁘게 보며 뭐라도 알려주고 도와주려 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돈 많은 젊은이들이라고 믿고 있는 할머니께서도 언젠가 길에서 인사드렸더니 들고 있던 커다란 가지를 대뜸 주셔서 당황하며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겨울에는 '그 밭(우리 밭)에서 무슨 김장할 게 나오겠냐'며 이집 저집에서 김치도 꽤 많이 주셨다. 11월에 얻었으니 벌써 반년째 그 김치를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