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막은 미국의 '핫라인'... 북한에도 이 전략 쓰자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연락은 안보를 강화한다

등록 2018.08.30 12:28수정 2018.08.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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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은 북핵 위협을 막고자 북한을 더욱 옥죄자고 주장한다. 그런 취지에서,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일에도 회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례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연락사무소 개소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한국 정부가 엇박자를 놓는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니, 국익 차원에서 신중했으면 한다"며 사무소 설치에 대해 신중론을 개진했다.

보수 진영은 북한을 압박하고 북핵 위협을 줄이려면 연락사무소 같은 것을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선전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그런 생각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 역사의 최근 경험과 배치된다. 이럴 때는 연락의 빈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게 최근 역사가 주는 메시지다.

쿠바 핵위기 때

1962년, 미국 코앞에서 이른바 '쿠바 핵위기'가 벌어졌다. 소련이 공격용 핵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건설하려다 미국의 저지로 실패한 사건이다.

이때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장 크게 숨을 내쉰 쪽은 미국이다. 한국 보수 진영이 북핵에 대해 느끼는 것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공포심을 미국이 느꼈던 듯하다. 남의 나라에서는 몰라도 자국 땅에서의 전쟁만큼은 끔찍이도 기피하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코앞에서 재래식 전쟁도 아니고 핵전쟁의 위기가 잠시나마 연출됐으니, 미국인들의 심장이 콩닥콩닥 뛸 만도 했다.


한국 보수의 논리대로라면, 그럴 때일수록 미국은 소련을 더 압박하고 연락도 끊었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한국 보수와 정반대 길을 걸었다. 그 유명한 핫라인(직통 통신) 설치에 착수했다. 소련과의 연락 빈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해가 생기거나 공격 충동을 느낄 때, 미리 연락을 해서 전쟁을 막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해서 1963년 6월 20일 양국 간에 협정이 체결되고 그해 8월 30일부터 핫라인이 가동됐다. 워싱턴에서 런던-코펜하겐-스톡홀름-헬싱키를 거쳐 모스크바로 연결되는 직통선이었다.


이때의 핫라인이 흔히 직통 전화로 오해되곤 하지만, 아니다. 오래도록 미국 정부는 이해를 돕고자 전화기 형태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연락 내용이 종이로 출력되는 직통 전신이었다. 직통 팩스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의 핫라인 상징물.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실제 사용된 것은 사진과 달리 직통 전신이었다.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의 핫라인 상징물.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실제 사용된 것은 사진과 달리 직통 전신이었다. 위키백과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에 관한 한, 최고의 노하우를 가진 나라들이다. 핵무기나 핵보유국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두 나라가 '핫라인을 설치하면 핵 위협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락 빈도를 높이면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보수와 전혀 다른 판단이었다.

그런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은 오래지 않아 입증됐다. 1968년 5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이런 사례가 소개됐다.
"1967년의 6일 전쟁 때 코시긴 소련 수상은 존슨 대통령에게 소련이 중동에서 전면전을 일으킬 의사가 없음을 핫라인을 통해 통고했으며, 존슨도 이틀 후 미 항공기의 출동은 자국의 선박을 보호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밝혔다."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과 이스라엘이 격돌한 대규모 전쟁이다.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도 함께 걸린 이 전쟁 당시, 양국은 전쟁을 확대시킬 의사가 없음을 핫라인을 통해 통보했다. 중동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데 핫라인이 활용됐던 것이다.
 6일전쟁 때 촬영된 사진.
6일전쟁 때 촬영된 사진. 위키백과

냉전 시대, 미-소 의사소통 촉진해 분쟁 막은 핫라인

핫라인은 '북한과 미국의 충돌'이 '소련과 미국 사이의 오해'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기여했다. 위 날짜의 <경향신문>에 나온 이야기다.

"지난 4월 15일 크레믈린궁의 각료회의 의장실에 설치된 텔레타이프가 긴급 메시지를 수신하기 시작했다. 당직 군인들이 황급히 모여들었다. 메시지는 영어에서 노어(露語,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즉각 당 제1서기 브레즈네프에게 전달되었다. '귀국은 북괴의 EC-121기 격추 사건에 대해 사전 정보를 갖고 있었는가?' 발신인은 닉슨 미 대통령으로 되어 있었다."

백악관에서 발송한 통신문에 '북괴'란 표현이 있었을 리 없지만, 박정희 치하의 1968년 한국 신문이라 이런 표현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 언급된 4월 15일은 북한 최대 명절이다. 1968년 이날은 김일성의 56회 생일인 태양절이었다.

이런 날, 미군 정찰기 한 대가 동해상의 북한 영공을 침범했다. 해군 전자정찰기 EC-121기였다. 긴급 출동한 미그 21기가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했고, 정찰기는 미군 31명과 함께 동해 속으로 추락했다.

이 사건 직후에 미국이 핫라인으로 "미리 알고 있었느냐?"며 소련에 연락했다는 것이다. 소련이 어떤 답신을 보냈는지는 굳이 기록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몰랐다"였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그때도 미국은 북한이 뭔가를 하면 '중국이나 소련이 배후에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그래서 모스크바를 향해 핫라인을 가동한 것이다.
"두 번째의 통신 내용은 '소련 선박들이 동해에서의 탐색 작업에 협조해줄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브레즈네프가 즉각 소련 해군에 협조 지시를 내릴 때, 소련 선박들은 이미 사전(事前)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 위 신문.

소련이 EC-121기 격추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한 미국이 이번에는 정찰기 및 미군 수색에 협조해달라고 핫라인을 통해 요청했다는 것이다. 나흘간 교환된 11건의 핫라인 연락 중에서 맨 마지막은 "미 정찰기에 대한 재차의 공격 시에는 군사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소련에 대한 군사보복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보복을 예고하는 경고였다. 북한이 또다시 도발하면 이번에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고 핫라인으로 경고한 것이다. 평양에 보내야 할 내용을 모스크바에 보낸 것이다. 소련 앞에서 자국의 체면을 지키려는 미국의 속생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재발 방지(영공 침범 자제)를 약속하는 문서에 미국이 서명함으로써 종결됐다.

이때의 핫라인 통신은 미·소 공조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지만, 미국이 소련을 오해해서 대소(對蘇) 강경책을 구사하는 사태를 막는 데는 이바지했다. 양국관계의 뜻밖의 악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EC-121기.
EC-121기. 퍼블릭 도메인

이처럼 핫라인은 냉전 시대에 미·소 간의 의사소통을 촉진시킴으로써 분쟁을 막는 역할을 했다. 핫라인 설치를 통해 미국은, 오늘날의 북한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당시의 소련이 미국을 상대로 핵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상대방한테 오해가 생길 때마다 두 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상대방의 진의를 확인하고 협력을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핫라인 설치는 신중함의 증표로 해석됐다. 니콜라스 랴자놉스키의 <러시아의 역사>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쿠바 핵위기가 가져온 결과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나온 말이다.
"그 결과는 의심할 것 없이 평화공존을 위한 논거를 강화시켰고,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의 유명한 핫라인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처럼 대외정책에서 신중함과 협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핫라인은 군사행동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다섯 손가락을 뭉쳐 주먹을 쥐고 펀치를 날리기 전에, 다섯 손가락 중 일부를 사용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보도록 함으로써 주먹 쥘 일을 처음부터 차단했다. 그래서 신중함과 협의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데 핫라인이 기여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처럼 핫라인만으로도 핵 위협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상설 연락사무소는 그것을 훨씬 더 많이 줄일 수 있다. 핫라인에 비해 연락사무소는 연락의 빈도를 월등하게 높인다. 그래서 연락사무소는 한국 보수가 북핵 위협을 좀 덜 느끼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상설화되면, 북한 지도부도 뭔가를 오해해 군부에 지시를 내리기 전에 연락사무소에 전화부터 걸어보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의 안전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서해에서 불측의 사태가 발발해 우리 해군이나 해병대 병사들이 희생되는 일도 막아줄 것이다. 서해에서 우리 어민들이 마음 놓고 조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는 연락사무소 설치에 반대하고 있다. 연락사무소 설치가 핵전쟁 위협으로부터 한반도를 자유롭게 하고 한국의 안보를 증진시킬 수 있는데도 그러고 있다. 그들이 정말로 안보를 걱정하고 있는 건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익 차원에서 신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남북 간의 연락 빈도를 낮추는 게 신중한 일이다. 하지만 랴자놉스키의 글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20세기 세계 역사는 경쟁국 간의 연락 빈도를 높이는 게 신중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핫라인도 그렇고 연락사무소도 그렇고, 연락의 빈도를 높이는 일은 안보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익 차원'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연락사무소 #핫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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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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