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스토리닷
<우리말 동시 사전>
최종규 글
사름벼리 그림
스토리닷, 2019.1.15.
엊그제 저녁에 글(동시)을 하나 썼습니다. 저녁 여덟 시 즈음이면 잠자리를 챙기고 아이들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누가 보면 저녁 여덟 시에 벌써 자려 하느냐 물을 테지만, 저는 늦어도 저녁 아홉 시 무렵에 꿈나라로 갑니다. 새벽 두어 시에 하루를 열고요. 시골에 살기에 이런 아침저녁을 보내지 않아요. 인천하고 서울에서 살 적에도 이처럼 하루를 누렸습니다.
꽃
나무는 꽃 지고 잎 지며
겨울을 맞아 앙상해도
속으로 꽃을 품어
곱게 푸른 숨소리
할머니는 이 빠지고 주름지며
허리 꼬부랑 느릿걸음이어도
가슴으로 별을 담아
밝게 널리 숨빛
열매는 냠냠 짭짭 꿀꺽
우리가 맛나게 먹어도
작고 단단히 남기는
야물게 깊이 숨씨앗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 샅샅 꼼꼼 읽어도
마음으로 이야기 심어
새롭게 방긋 숨꽃
엊저녁에 쓴 글에 '꽃'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큰아이하고 책숲집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아이가 문득 "아버지, 나무는 있잖아, 꽃이 지고 잎이 져도 꽃이 있어. 그게, 나무는 언제나 속에 꽃을 품고 살거든." 하고 노래하듯이 말을 했어요.
이 말을 바로 수첩에 적고 싶었으나, 수첩보다 마음에 먼저 새겼어요. 아이가 잇달아 하는 말을 가만가만 듣고는, "그러네, 나무는 언제나 꽃이로구나." 하고 대꾸했고, 밤하늘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이 이야기를 다시 큰아이한테 돌려주자고 생각했어요. 이 마음 그대로 글(동시)을 썼습니다.
2019년 1월 9일에 <우리말 동시 사전>(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19)이 태어났습니다. 큰아이가 곁에 찾아온 2008년에는 동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못했으나, 이듬해인 2009년부터 아이한테 읽힐 글은 어버이가 손수 삶을 짓는 사랑으로 쓸 적에 가장 곱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 느낌 그대로 그때부터 글을, 동시란 이름인 글을 썼어요. 열 해 동안 쓰고 다듬고 고치고 새로 손질한 글이 동시집으로 태어났는데요, 마침 1월 9일에 뜻깊은 영화가 하나 나란히 나왔습니다. "말모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