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라 리비 <알고 싶지 않은 것들>
플레이타임
책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 데버라 리비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종분리 정책이 한창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여기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밤 경찰에 끌려간다.
어린 리비는 아버지가 감옥 어딘가에서 고문을 받고 결국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임을 안다. 나는 당시 남아공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이 '소수자'가 단지 '적은 숫자의 사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끌고 가든 무지의 장막을 씌우던 사회는 소수자들을 통제하고 존재를 숨기다 결국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이 실제로 숨을 쉬고 같은 땅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이후 리비는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그녀는 글을 모르지 않지만 소통을 거부한다. 언어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 모르겠다. 왜 안 그러겠는가. 지성과 언어로 신념을 지키고 표현했던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를 똑똑히 보았는데 말이다.
이후 어린 리비는 숙모의 집으로 보내져 수녀원 부속학교에 다니게 된다. 말을 하지 않으니 그녀가 언어를 모르리라 생각한 수녀들은 리비에게 알파벳부터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중에 조언 수녀는 리비가 사실은 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리비가 학교를 떠나는 날 묻는다. 읽고 쓸 줄 안다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어린 리비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녀는 책에 조언 수녀가 했던 답을 이렇게 옮겨 적었다.
"난 모르겠다고 답했고, 수녀님은 읽고 쓰기처럼 '초월적인'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통찰력이 있었다. 내 안에는 글쓰기의 힘을 두려워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으니까. 초월적인 것이란 '너머'를 뜻했고 내가 만일 '너머'를 글로 쓸 수 있다면, 그게 정확히 무얼 의미하든 간에, 그럼 난 지금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도망칠 수 있을 터였다."
오늘도 내일도 용감해야 할 이유
이 책의 후반부에 리비는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앞서 나는 중국인 가게 주인에게, 작가가 되고자 나는 끼어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노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고 정확한 언어로 명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인용한 문장을 빌려서 말하자면, 소수자들에게 이 과정은 초월하는 일이자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인식의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동체 내부에 분명 있음에도 여전히 낯설게 여겨지는 존재들에게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다시금 익숙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다. 소통이 좌절될 말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도 않고 이를 일상으로 가져오기도 싫다. 소수자로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드러내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쓰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마주할까 두렵다.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내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할지 알려주는 표지판을 본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움에 무너져 안주하길 선택한다면 나와 나의 동료들은 여전히 낯설고 불가사의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존재들은 쉽게 오해받고 편견에 갇힌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런 삶은 온전하지 않다.
리비의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고 유모인 마리아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빼앗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부모도 인종차별에 반대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나는 역사를 배우고 앞선 세대에도 나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발견하고 이름을 되찾아 주기 전까지 그들은 가십거리나 철저한 외부인 혹은 유령처럼 취급됐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역시도 엄연히 존재했지만 사회에서 밀려나 은폐되고 사라진 이들이었다. 마리아는 어린 리비에게 말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용감해야 한다, 너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가 용기를 내야해. 그 아이들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빼앗겼을 테니까."
오독과 비약을 섞어 말하자면, 나에게 마리아의 이야기는 지금껏 이름이 없어서 존재할 권리를 빼앗기고 사라져 있던 우리를 위해 용기를 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먼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책에서, 여러 현장에서, 일상에서 마주쳤던 가깝거나 아주 먼 성소수자들을 생각했다.
그래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만 용감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히 보였다. 물론 나는 꿈속에서 또 다시 왜 시스젠더 모르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꾸기 까지 나는 성적소수자인 우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낯선 존재인지 다시금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에 실망과 좌절이 쌓이면 그런 우리에 대한 말을 하고 글을 쓰기가 꺼려질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 이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용감해야 한다. 용감하게 쓰고 말해야 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박민정 후기,
플레이타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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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어렵다는 사람들... 그럼에도 나는 용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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