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낙타 그리고 베두인. Golden Blocks을 떠나서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찍은 사진.
차노휘
그런데 그날은 호텔 앞 카페에서 펀 다이빙 손님이었던 그녀와 수다를 떨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많이 웃었다. 젖은 슈트를 벗어서 햇볕에 말려놓고는 마늘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바닷가에서 스노클링이나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여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따라 오후 다이빙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일랜드는 최대 수심이 18m였고 산호초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사진 촬영하러 많이 온다고들 했다. 눈부시도록 햇살이 좋아 산호초는 더욱 화려하게 빛날 거였다.
내 여유와는 달리 센터는 교육생(오픈워터나 어드밴스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들로 북적거렸다. 조나단은 다른 DMT와 이제 막 다이빙을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내 즐거움이 얼굴에 표가 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점심 먹고 왔어요."
"차노휘 씨, 이제 펀 다니지 마세요."
"네에? 당분간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깡수를 늘려서 실력을 쌓으라고 했잖아요? 오늘 아침 처음으로 긴장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오후에 갈 아일랜드(The Isands)는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가면 안 될까요?"
"여하튼 펀 가지 마세요. 오후에 장비 브리핑이 있어요."
나는 느닷없는 조나단의 말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장비 브리핑이야 다음번에 들어도 될 일, 아침까지만 해도 펀을 가라고 했고, 며칠 전에는 일단 깡수를 채우라고 했다. 그리고 다이브마스터 훈련생을 모집할 때 훈련비를 내면 펀 다이빙 비용이 공짜라고 광고까지 했다. 어느 정도 깡수가 차야 레스큐 다이빙 시험도 볼 것이 아닌가. 그 몇 시간 사이에 말을 번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착잡해졌다. 앞뒤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내지르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 두 달 동안 부딪치면서 다이브마스터 훈련을 마칠 수 있을까. 머나먼 곳까지 날아와서 만만치 않은 교육비를 내고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 나는 언짢아졌다. 갈 수 없게 만드는 그 이유가 설득력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나는 왜 펀 장비를 챙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메드도 오후 가이드를 맡은 마하무드 그리고 함께 오전 다이빙을 동행했던 사람들도. 심지어 줄리아까지도 물었다.
그들이 장비를 챙겨 떠나는 것을 쓸쓸하게 봤다. 그리고 알았다(느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첫 번째 위기가 왔다. 나는 나를 알고 있었다, 강압적인 것을 너무나 싫어한다는 것을. 다이브마스터 훈련생이 아니라 마스터스쿠버 다이버 길을 갔어야 했다. 아마추어로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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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ghthouse 바닷속 거북이 ⓒ Octopus Dive Center 제공
이날 가지 못한 아일랜드 펀 다이빙은 정확히 한 달 뒤, 아주 흐린 오후에 딱 한 번 가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오픈워터와 어드밴스 교육시키는 교육생들 보조를 맡게 된다. 나이트 다이빙을 제외한 펀 다이빙은 20(1월 25일)일 뒤에나 몇 번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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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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