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순국하시기 전, 목재 십자가 사형대에 묶여있는 모습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일본군은 신문에 '윤봉길의 시신은 화장했다'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원의 소각장 옆 좁은 통행로에 암장했다. 윤봉길 의사가 암장된 통행로는 일반인들이 도보로 다닐 수 있는 평범한 길이었다. 일본군이 윤봉길 의사의 시신을 통행로에 암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일 학자들은 대체로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짓밟고자 했던 일제의 잔혹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권을 지키지 못해, 순국한 동지의 유해조차 거두지 못했던 슬픔이 서린 역사다.
윤봉길 의사가 암장된 통행로가 소각장 옆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더 아픈 진실이 숨어있다. 바로 그 통행로는 1932년 '상해사변 진몰자 합장비(上海事件陣歿者合葬碑)'로 가는 길이었다. '진몰자'는 '전몰자' '전사자'와 같은 의미다. 지금은 새로 큰 길이 만들어져 '상해사변 진몰자 합장비'로 갈 때 사람들이 그쪽으로 다니지만, 당시에는 윤봉길 의사가 암장된 소각장 옆 좁은 통행로가 유일한 길이었다.
상해사변은 중국 상해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으로 중국과 일제가 무력충돌을 한 사건이다. 일제는 중국과의 충돌에서 이겼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는데, 이때 윤봉길 의사가 채소를 파는 상인으로 변장해 폭탄을 던졌다. 윤봉길 의사가 처형되기 이틀 전인 12월 17일, 윤봉길 의사의 폭탄으로 다리 한쪽을 잃은 제9사단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중장은 '상해사변 진몰자 합장비'를 설립하고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