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의 수동기어 차량의 출고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언뜻 '수동 반, 오토 반'이었는데 이제 수동기어 차량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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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실의 자료를 들춰보니 학교 교직원용으로 등록된 차량 대수가 총 136대였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여러 대가 등록된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테니 전체 교직원 수를 감안하면 100대 정도의 차량이 매일 교문을 드나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충 세단 형 승용차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반반이다.
일일이 확인한 결과 학교 내 수동기어 차량은 내 차를 포함해 달랑 2대뿐이었다. 만 10년 된 2009년식이라 그나마 여태껏 남아 있는 거라면서 3년이 채 안 된 내 차가 사실상 유일한 수동기어 차량이라고 '공인'을 받았다. 2009년보다 연식이 더 오래된 차량도 10대 남짓 있었지만 모두 오토 차량이었다.
그는 내기에 져서 커피를 사야 한다는 것보다 아직도 수동기어 차량을 몰고 다니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운전면허 시험도 대부분 오토 차량으로 응시하고 택시는 물론 시내버스조차 수동기어를 쓰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수동기어가 장착된 건 오로지 순간 스피드가 요구되는 스포츠카뿐이라고 여겨왔단다.
듣자니까 최근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의 수동기어 차량의 출고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언뜻 '수동 반, 오토 반'이었는데 이제 수동기어 차량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자가용 승용차로만 한정하면 비율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오랜 문화유산이나 독특한 경관이 아니라 도로에 오토 차량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30도는 돼 보이는 가파른 언덕길에 주차된 차량에 수동기어가 장착돼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렌터카가 수동기어 차량뿐이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을 만난 적도 있다.
같은 모델인데도 내수용은 오토, 수출용은 스틱
전 세계적으로 오토 차량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토 차량 선호 현상은 유독 두드러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재 유럽의 자동차 시장에서 수동기어 차량은 60%대이고, 프랑스의 경우 80%를 넘는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같은 모델인데도 내수용은 오토, 수출용은 수동기어를 장착하고 있다. 심지어 수동기어를 선택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동기어 차량을 외면하게 된 이유는 뭘까. 흔히 교통 체증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운전하기가 불편하다는 걸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하다. 비탈진 지형에 도로마저 비좁고 교통 체증 역시 만만치 않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여전히 수동기어 차량이 다수라는 걸 설명해낼 수 없다.
일각에선 과거 자동차 보험사의 횡포를 탓하기도 한다. 오토 차량이라는 이유로 보험료를 대폭 할인해주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시나브로 수동기어 차량을 선택하지 않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토 차량의 기술 향상으로 연비나 가격 등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과 장애인의 외부 활동 증가와 인구의 고령화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과거 수동기어 차량을 구입할 때 영업사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충고'가 있다. 같은 모델의 오토 차량에 비해 턱없이 싼 이유는 기어의 기계 값 차이도 있지만, 그보다 중고차로 팔 때 제 가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심지어 오래 타다 고장이 날 경우 차량을 맡길 정비소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오토 차량을 팔기 위해 부러 겁을 준 것이지만 그도 수동기어 차량이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선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기술력이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오토 차량에 견줘 여전히 장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차량 가격이 싸고 연비가 뛰어나며, 유지비가 적게 들고 가속 능력이 좋다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백하듯 말했다.
우선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급발진 사고의 위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 운전을 하자면 두 손과 두 발이 다 움직여야 하므로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연비가 좋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오토 차량에 견줘 탄소 배출량이 20% 이상 적어 상대적으로 대기오염에 피해를 덜 끼친다고 강조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지만, 환경적으로 보면 운전의 편리함과 그만큼의 탄소 배출량을 맞바꾼 셈이죠."
동료교사와의 엉뚱한 내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편리함'에 대해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두고 나 또한 '진보'이며 '선(善)'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영업사원의 말마따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편리함은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양의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리함이 만든 불편함... 학생의 뜻밖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