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던 기사가 시민기자의 스타일대로 딱 맞게 들어올 때, 우리가 예측한 그 가능성 확인될 때 편집기자는 일의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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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가 채택이 되는 기사들에 대한 브리핑이었다면, 채택이 되지 않는 기사들은 어떨까. 아쉽지만, 편집기자인 나를 포함해 수십 혹은 수백명의 독자들이 보는 데서 그치는 비채택 기사들. 그 중에 지난해 기억나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낯선 이국땅에 와서 산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을 텐데
부모 형제 떠나서 고향생각에
밤에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
용기와 인내로 지금까지 잘 참아왔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안 좋은 시선과 편견들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외로움 다 이겨내고
내색한번 내지 않고 꾹꾹 참아왔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지나왔던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 사회에 발을 내 딛었건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배움만이 선택의 길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한다.
나는 스스로 칭찬한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는 시민기자의 글이었지만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 알 것 같아서 몇 번을 읽었다. 편집기자는 본인이 채택, 비채택을 판단한 모든 기사에 대해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소견란에 남긴다(시민기자는 취재경위를 쓰고, 편집기자는 소견을 쓴다). 나는 이 기사에 '채택하지 못해서 죄송해요'라고 썼다. 시민기자에게 닿을 수도 없는 말인데... 가끔 이런 글이 있다. 기사는 안 되지만, 편집기자 마음에는 남는 글.
이 글이 이랬으면 좋았을 걸... 왜 이민을 갔는지, 어떤 일을 겪으면서 '밤에는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 살았는지, 또 그럼에도 '어떻게 혹은 왜,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안 좋은 시선과 편견들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외로움'을 이겨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썼다면. 독자들이 기자의 상황과 마음을 알 수 있게 썼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나 스스로 칭찬'할 뿐 아니라, 독자들도 정말 잘 살아냈다고 칭찬할 만한 이야기가 됐으면 어땠을까,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이 짧은 에세이가 품고 있을 더 깊고, 귀한 이야기들이 궁금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기사로 채택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다시 써주세요, 라고 이야기 하지도 않았다. 그건 내 판단이었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많은 경험상, 기사로 채택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그 부분을 보강해서 다시 써달라고 했다치자. 다시 몇 시간을 공들여 쓴다고 해서 그 글이 완전 100% 바뀌어 오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러니 당연히 수정한 글이 100% 채택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이때, 기사가 채택되지 못한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다. 시민기자의 책임일 때도 있고, 편집기자의 책임일 때도 있다. 책임 여부를 떠나 분명한 건, 양쪽 모두 난감하고 때로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는 거다. 편집기자 일이 힘든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편집기자가 먼저 시민기자에게 비채택 사유를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물론 '먼저 이야기 하길 잘했어!' 싶은 결과가 도출될 때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는 게 슬픈 현실). 시민기자가 요청하면 비채택 이유를 말해주는 기사클리닉이란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원래의 의도대로, 목적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대부분 실패나 거절을 두려워한다. 안 좋은 경험은 두 번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당장 기분이 나쁘니까. 서운하니까. 물론 실패와 좌절을 좋은 경험으로 삼고 서로 미안해 함과 동시에 고마워하며 끝났다면 계속 시도하고 일을 벌일 거다. 실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지만, 100% 그렇게 일이 술술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편집기자 역시 일의 효율성이라는 걸 안 따질 수 없다. 정해진 인력과 시간 안에서 기사 검토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기획도 해야 하고, 시민기자도 만나야 한다. 기자게시판 관리도 해야 하고, 회사 메일도 돌아가며 체크하고, 각종 민원, 명함 신청과 제작 주문, 연재기사 관리, SNS 게시 등도 처리해야 한다. 달마다 이달의 새뉴스게릴라, 이달의 뉴스게릴라 후보를 추리고 심사도 해야 한다(써놓고 보니, 정말 할 일이 많다). 매 순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또 한번에 처리되는 기사도 있지만, 데스크를 거치는 동안 두 번 세 번 검토해서 보완이 끝난 뒤에 처리되는 기사들도 있다.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내 일로 남아 있는 거다. 넘치는 의욕만으로는 일이 항상 잘 되지는 않는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런 불확실성을 늘 염두에 두고 매 순간 판단하는 일이 편집기자 일이다. 내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그래도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기본 업무를 충실히 하는 것도,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일도 편집기자에게는 모두 다 중요한 일이니까. 시민기자들에게 이런 기사도 저런 기사도 써보라고 제안하는 청탁이 계속 되는 이유다.
원하던 기사가 시민기자의 스타일대로 딱 맞게 들어올 때, 우리가 예측한 그 가능성이 확인될 때 편집기자는 일의 기쁨을 느낀다. '이 맛에 편집기자 일 하는 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일은 시민기자의 질적 성장과 동시에 편집기자가 자기 색깔(콘텐츠)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말을 하려고 쓴 글은 아닌데요, 2020년에도 기획과 청탁 업무는 계속 될 테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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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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