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유허비 앞에서(오른쪽부터 전 강구휘 도의원, 전 허호 구미시의원, 기자).
박도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
2001년 겨울, 고향의 한 친구(강구휘 전 도의원)와 함께 박정희 상모동 생가에 갔다. 그곳 상모교회에 가서 구미보통학교 친구였던 한상도 장로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들었다. 그다음 임은동으로 가서 구미중학교 한 선배(허호 전 시의원)로부터 왕산가의 피어린 항일투쟁사를 들었다. 그와 함께 바로 이웃마을 오태동 장택상 생가에 가서 세 집안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도 들었다. 그런 뒤 금오산에 있는 왕산 유허비까지 답사했다.
그날 저녁, 친구와 한 밥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바로 옆 자리에 늙수그레한 노인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게 그 어른이 지난날 선산경찰서 '장 형사'라고 소개하면서 합석케 해 박 대통령의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5.16 쿠데타에 고향사람들도, 가족까지도 놀랐다고 한다. 경상도 벽촌 구미 상모동 출신 무명의 한 군인이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할 줄은 몰랐다고 입을 다물지 못한 모양이다.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입법·사법·행정 등 3권을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자 권력을 쫓는 각지의 '똥파리' 같은 이들이 멀리 구미 상모동까지 날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적폐는 혈연·지연·학연이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든지, "한 마당에 팔촌 난다"라면서 혈연을 유독 강조했다. 어떤 사학의 경우엔 이사장에서부터 교장, 행정실장, 수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집안 친인척이 차지하기도 했다.
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라면 더 반갑다"든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 연고주의도 있다. 자기네 고장 사람들만 똘똘 뭉쳐진 기업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정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학벌도 예외는 아니다. 사법부나 국방부 같은 곳조차도 무슨무슨 회라는 둥, 마피아 조직처럼 선후배 조직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