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마음> 표지책을 만든다는 건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일하는 것이다.
함혜숙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기획의 출발은 순전히 나를 위한 책을 만드는 거였다. 편집에 문외한이었던 나를 위한 지침서를 갖고 싶었다. 10년차 편집자의 업무 노하우를 단숨에 배우고 싶다는 내 사심이 노골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책을 만들 때 한 명의 독자를 정해 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제대로 성공한 셈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자면,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고를 편집하며 여러 차례 반복해 읽다 보니 당연히 편집 실무도 배웠지만 이지은이라는 사람을 통해 '편집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섯 개 출판사를 다니며 이리저리 치이고 상처받던 사회 초년생이 점점 단단해져 가는 과정은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10년 넘게 번역가로 살던 내 삶을 그대로 대입해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지은 편집자는 처음 입사한 출판사에서 2개월 만에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넌 편집자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어느 분야든 처음부터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모든 신인에게 베테랑급 실력을 은근히 기대하고 요구한다.
"실력 없는 너를 뽑아서 돈 주며 가르치니까 고마워해야 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회사에 들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 취급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계속 부족한 자신을 탓한다. 이지은 편집자 역시 신입 시절에는 온갖 모욕을 당해도 늘 "죄송하다"고 말할 뿐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10년이 훨씬 지난 이제서야 과거의 자신에게 미안해 하는 이유다.
출판사 역시 회사다. 회사에서 신입으로서 온갖 모멸과 상처를 받아도 '내가 무능한 탓이야'라고 생각하던 이지은 편집자는 이제 달라졌다. 어디선가 같은 상처를 받고 있을 후배에게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담담히 응원의 말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만 생각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함께 책을 만드는 동료 및 프리랜서들의 마음까지 돌보는 여유가 생겼다.
이지은 편집자는 '내가 행복해야 내 책도 행복하다(39쪽)'는 모토로 일을 한다. '100만 명이 사랑해 주는 책을 만든다 해도. 만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책은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나는 <편집자의 마음>을 편집하면서 동료 겸 사수 하나를 얻었다. 내가 <편집자의 마음>을 만들면서 행복했으니, 적어도 이 책이 독자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편집자의 마음 - 공감하고 관계 맺고 연결하는
이지은 (지은이),
더라인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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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편집자의 노하우보다 전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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