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지는 여성
픽사베이
"카렌이 누구인가? 카렌은 (매장에서) 매니저를 부르라고 하는 사람이다. 카렌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카렌은 장을 보느라 정신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달걀을 사지 못한다면 그것은 카렌의 잘못 때문이다.) 카렌은 백인이다. 카렌은 중년이다. 카렌은 교외에 거주한다. 카렌은 이성애자다. 카렌은 아이가 있다. 카렌은 층진 보브컷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이다. 카렌은 인종차별주의자다. 카렌은 섹시하지 않다. 카렌은 유기농 케일 샐러드를 먹는다. 카렌은 멍청하다. 카렌은 힐러리 클린턴이다. 카렌은 제스 필립스다. 카렌은 엘리자베스 워렌이다. 카렌은 당신이 카렌이라고 부르면 무척 화를 낸다. 카렌에는 언제나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사라 디툼(Sarah Ditum)이란 칼럼니스트가 영국의 인터넷신문 <언허드 UnHerd>의 4월 21일자에 "The sly sexism of the OK Karen meme"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카렌'을 정의한 글이다. 여기서 사용된 '밈(meme)'은 유행어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카렌이란 용어를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이 용어의 부정적 의도에 그대로 순응하여, 나는 리사와 카렌을 겹쳐서 보게 된다. 교양 있고 올바른 척 하지만 골수까지 차별주의가 차 있고 엉뚱한 발언과 비합리적 행동을 일삼는, 타인종에 대해 근거 없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백인 여성. 상대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고 경찰에 신고까지 불사하는 '깬 시민'. 리사는 카렌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카렌이 백인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아마 황인종 카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비논리적 주장이냐고? 칼럼니스트 디툼은 카렌이란 정의 자체가 비논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당초 백인 여성의 특권의식을 조롱하는 데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관된 원칙 없이 이것저것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짜증내는 행태를 벌이는 여성이면 거기에다 카렌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 디툼의 설명이다. 지금은 우리가 카렌하면 당장 샌프란시스코의 리사를 떠올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식 카렌으로 '김여사'를 떠올리게 될 수 있다.
"이 생명체는 가난하지도, 폭력을 경험하지도, 강간당하지도 않고(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그녀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항상 아름다움을 느끼고, 유색인종 도우미에 불평하고, 팁을 짜게 주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어쩌면 이런 유형이 카렌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성이면 카렌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사에게 후아닐로가 그저 가난한 흑인의 하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듯이, 여성혐오와 가부장제를 기본값으로 하는 이들에게 여성은 카렌이 될 수밖에 없다. 카렌은 특정한 유형의 여성을 희화화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여성을 혐오한다는 뜻을 담은 용어이다.
카렌과 같은 용어와 용어사용의 문제점은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고착화하고 확대하는 한편 계급 인종 등 다른 사회문제를 성의 문제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사의 문제는 리사의 문제이지 카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가 리사와 카렌을 연결 지으며 우려한 지점이다. 리사가 백인인 것이 (또는 후아닐로가 유색인종인 것이) 샌프란시스코 사건의 본질이지 리사가 백인 여성, 즉 카렌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어떤 독자는 생각지도 않은 카렌을 끌어들여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흐리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다. 가능한 반박이다. 다만 카렌을 알든 모르든 어떤 이들은(주로 남성이겠지만) 머릿속에 고정적인 카렌을 심어두고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노파심에서 해본 얘기다. 아니면 다행이고. (하나마나 한 이야기겠지만) 어차피 한국 이름이 아니니 카렌이 한국에 입국하는 일 또한 없으면 정말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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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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