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김평강.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그날의 슬픔이 가득하다.
한톨
삼양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살던 집이 있었다. 하얀 벽에 세련된 건물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예전 살 때는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볼품도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멋지네."
그곳에는 여러 기억이 남아 있다. 입대, 결혼, 일본 밀항, 간첩으로 조작되기까지.
"4.3 터지고 나서는 제주 남자들은 전부 해병대에 지원을 했어. 빨갱이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는 당연히 해병대로 지원해 갔다고. 그때 포항 이쪽으로 가면 전부 제주사람들. 우리 인사참모도 한국전쟁 때부터 참전했던 제주사람이라. 그래서 해병대 가면 위로 아래로 제주사람들이라 참 잘해줬어."
4.3의 최대 피해자인 제주사람들이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입증하기 위해 더욱 보수적으로 행동해야 했던 건 비단 제주만의 일은 아니다. 강릉이나 대구와 같이 해방 전후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은 더 탄압을 받았고, 이 탄압을 피하려면 정권을 지지하며 스스로 보수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