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바싹 말려서 볶은 후 끓는 물에 우려 마시는 '옥수수차'는 '강냉이차'라고도 부른다. 볶은 옥수수는 가루 내 물에 직접 타 먹기도 한다. 이뇨 작용을 하는 옥수수수염을 말려 차로 이용할 수도 있다.
박진희
언젠가 지나다 보니, 시장 방앗간 매대에는 볶은 겉보리와 옥수수가 팔리고 있었다. 보리차나 옥수수차는 마트나 인터넷쇼핑몰에서 티백이나 페트병 형태로 제품 구매가 가능하다. 차 종류도 다양하여 허브차, 마테차, 보이차, 캐모마일 등 미용,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차 종류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모른다. 그래도 보리차와 옥수수차처럼 저렴하면서 구수하니 물리지 않는 음료는 드문 것 같다.
나 어릴 적 풍족하지 않던 시절에도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학교에서도 잔심부름하시던 '소사(小使)' 아저씨가 늘 보리차나 결명자차를 큰 솥에 끓여 놓았었다. 주번은 청소를 대충 마치면, 큰 주전자에 그걸 퍼다 급우들 마시라고 교실 뒤편에 갖다 놓았다.
일반 음식점이며 찻집에서도 으레 손님이 들면 보리차를 내놓았다. 물론 집에서도 큰 솥 가득 보리차를 끓여 차갑게 하거나 따뜻하게 마셨는데, 지금처럼 정수기를 갖춰 놓거나 생수를 배달해 먹지는 않았어도 먹는 물에 있어서만큼은 호사를 누렸지 싶다.
어느 해 여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어린 사촌동생이 집에 놀러 온 날이다. 쏴!' 사촌동생이 수돗가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오줌을 누어댔다.
"그놈 참, 시원하게도 싼다."
어른들 칭찬에 오줌발은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아버지께서 헐레벌떡 뛰어와 사촌동생을 가로막기 전까지 그 누구도 뒷수습이 힘든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사촌동생이 정조준하여 오줌을 갈긴 곳은 삼대가 먹을 보리차를 한 솥단지 끓여서 식히던 커다란 고무대야였다. 끓이는 데도, 식히는 데도, 긴 시간이 걸렸던 보리차는 결국 하수구로 직행했다.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사촌동생은 자신은 그런 거사를 벌인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방앗간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착한 먹거리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 이용하여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착유한 기름, 팩에 싸인 떡, 가공된 음료에 익숙해지는 사이 방앗간 수는 줄어가고 있고, 방앗간을 둘러싼 추억 또한 향미 잃은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빈들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 된 양 헛헛하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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