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
월간 옥이네
"방학이 싫다. 졸업은 더 싫다."
손꼽아 기다리는 방학,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기다렸던 졸업. 학창시절을 거쳐온 이들 대부분에게 방학과 졸업은 긴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여름‧겨울마다 찾아오는 방학에 속상함을 숨기지 못하는 학생들, '나 졸업시키지 말라'고 부탁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방학과 졸업을 마다하는 것일까.
'주민 자치'로 이름을 알린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 그런 학생과 학교가 있다. 2003년 문을 연 '안남어머니학교'다. 안남면 주민을 위한 문해학교인 이곳이 어느덧 설립된 지 17년이 흘렀다. 지난 시간 동안 이곳 어머니 학생들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조금 더 주름진 얼굴, 조금 더 작아진 몸집, 조금 더 느려진 발걸음... 하지만 17년 전 출석부에 '내 이름 빼먹지 말라'고 당부하던 마음과 이곳에서 만난 행복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농촌 여성의 잃어버린 권리 회복의 시작이자 안남면 주민 자치의 출발점이던 안남어머니학교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어머니들 마음에 '학교 종'이 울리던 날
2003년 2월 25일 안남면사무소 2층에서 조촐하지만 가슴 벅찬 입학식이 열렸다.
"배우긴 했는데, 시집 와서 일만 하다 보니 다 까먹었지."
"한글도 몰라서 이렇게 나오니 부끄럽네."
"뭘! 모르는 거 배우는 건 당연한 거지, 그게 어디 부끄러운 일인가?"
어려운 시절,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모인 안남어머니학교 학생들이다. 이렇게 모인 '어머니 학생'은 50여 명. 당시 안남초등학교 전교생 숫자에 맞먹는 규모다.
안남어머니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현재까지 교사 활동 및 운영을 맡고 있는 송윤섭 교장은 이날을 안남면 주민 자치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공동체 다른 구성원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었던 데다, 이를 시작으로 ▲ 안남면 순환 버스 ▲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 ▲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 등 안남면 주민자치의 상징이 이어졌기 때문.
인접한 안내면에 이듬해 '행복한학교'라는 이름의, 역시 지역 여성 어르신을 위한 문해학교가 열리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가부장적 농촌 문화에서 배제돼온 여성을 삶의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서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자치와 관련해 일상적인 지역 활동을 챙겨보면 좋지 않겠나 하는 고민이 있었죠. 마침, 글을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마을 여성 어르신이 많다는 걸 접했고요. 여기에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였고, 학교 운영 준비를 시작했어요. 마을마다 다니며 어머니 학생들을 모집했고요." (송윤섭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