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수변공원에서 바라본 치악산(2020. 9. 촬영)
박도
나는 전생에 산과 인연이 있나 보다. 출생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16년간 고향 구미의 금오산 자락에서 날마다 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교사가 된 이후 1973년 서울 구기동 북한산 기슭 한옥에 내 문패를 달았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지대의 내 집을 날마다 등산하듯이 오르내리면서 출퇴근을 했다. 그로부터 서울을 떠날 때까지 무려 한 집에서 꼬박 32년을 산 뒤 떠나왔다. 그동안 날마다 북한산 상봉을 바라보면 산 셈이었다.
2004년 교사생활을 마무리 한 뒤 곧장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4리 말무더미 마을로 내려왔다. 그곳은 오지 산마을로 매화산 자락이었다. 매화산은 치악산 지봉이다. 거기서 만 6년 동안 반거들충이 농사꾼으로 살다가 원주 시내로 이사했다. 이즈음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치악산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일찍이 공자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고 했다. 아마도 내 천성이 용렬하고 모나기 때문에 날마다 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닦으라는 계시로 산과 가까이 살게 되었나 보다. 아무튼 산과 가까이 살아온 것은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이번 원주 치악산 자락 생활은 내 문필 생활의 마지막 보금자리라는 예감만은 지울 수 없다.
교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산골 안흥 마을로 귀촌한 2004년 4월 2일부터 2005년 11월 18일까지 오마이뉴스에 '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의 연재를 136회 이어간 바 있다. 이번에 새로이 연재하는 '박도의 치악산 일기'는 그 후편인 셈이다. 나는 앞으로 이따금 이 치악산 자락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써서 독자에게 정성을 다해 바치고자 한다.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의 마음을 얻어라
옛 경세술에 따르면 천하를 얻고자 하는 이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단다. 현대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게 그리 쉽지 않다.
2004년 3월, 나는 33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임식을 마친 뒤 그 달 말일에 두 아이를 서울에 둔 채 곧장 아내와 같이 강원도 오지 안흥 산골로 내려왔다.
서울에 남은 아이들은 갑자기 부모와 떨어지는 외로움에 고양이 카사를 분양해 길렀다. 그러다 낮 시간 집에서 홀로 지내는 카사가 불쌍하다며 그해 연말 안흥 집에 데려온 뒤 슬그머니 떨어뜨리고 갔다. 그런데 그 녀석은 아내는 졸졸 따랐지만 나에게는 '소 닭 보듯' 했다. 그 영문을 깨달은 바,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그 녀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뒤 아내가 목욕을 시킬 때 그를 잡아주기도 하고, 밥도 챙겨주고, 제 화장실 청소도 해 주는 등, 3개월 남짓 저를 극진히 돌봐주었다. 그러자 어느 날 저녁 웬일인지 그 녀석이 슬그머니 내 무릎에 오른 뒤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