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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의 무기력증, 이런 특효약이 없습니다

[팔순의 내 엄마] 외출도 한사코 마다하더니... 고향집에서 냉이를 캐고 되찾은 활력

등록 2021.03.28 17:17수정 2021.03.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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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겨울이 끝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겨우내 집 거실을 지키던 엄마도 봄내음에 마음이 싱숭생숭하신가 보다. TV 화면에서 꽃 소식을 보면서 '벌써 꽃이 피었네…' 하며 나들이 하고 싶은 마음을 비추다가도 '한번 나갈래요?' 하면 안 간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하루에도 코로나 환자가 몇백 명씩 나오는데 어딜 가냐'며 한사코 거부했다.

이번 겨울 내내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엄마는 이제 영락없이 '할머니'가 되었다. 미장원 발길을 끊은 지가 3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매 달 때를 놓치지 않고 미장원에 가서 코팅하고 예쁘게 뽀글이 파마를 하고 거실로 들어서던 엄마 모습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겨울 내내 집에만 있던 엄마
 
시골집 텃밭에서 열심히 냉이를 캐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짠했다.  우리의 무기력증을 날려 준 냉이 캐기
시골집 텃밭에서 열심히 냉이를 캐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짠했다. 우리의 무기력증을 날려 준 냉이 캐기 변영숙
 
파마 기 없는 흰머리가 파뿌리처럼 길게 자라났고 얼굴은 끈기 없는 풀처럼 푸석푸석했다. 1m 앞 TV 화면에 고정된 시선에는 초점이 없었다. 지난 3개월간 엄마는 하루 종일 악다구니 써 대는 드라마에 빠져 등장인물들과 같이 욕하고 화내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춥다고 산책을 거르기 시작하더니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긴 집콕 생활에 엄마가 소리 없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엄마의 상태는 분명 '무기력증, 우울증'으로 보였는데,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엄마가 겨우 생각해 낸 말은 '재미가 없다'였고 조금 더 적극적인 의사 표시는 '귀찮다'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엄마의 바깥 출입의 전부였다. 더 이상 엄마를 방치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바깥 바람을 쐬어 드려 기분 전환을 시켜 드려야 하는데. 그런데 모든 제안을 거절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루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다가 물었다. 

"엄마, 날도 많이 풀렸는데 다음 주에 냉이 캐러 갈래요?"
"어디로?"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을 뿐인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신다. 근래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글쎄, 대모시에 없을까?"
"거기 무슨 냉이가 있어?"
"작년에도 거기서 하지 않았나. 가보지요 뭐."
"누가 안 해 갔으면 있을 수도 있어."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일주일 후 다시 물어 봤다.

"엄마 진짜 냉이 캐러 갈래요?"
"그래, 가자."


첫 대화 이후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내심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엄마의 오랜 칩거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냉이가 있든 없든 그것은 둘째 문제였다. 엄마가 다시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냉이 앞에서 거침없는 행보
 
시골집에서 캔 냉이  우리의 무기력증을 구해 준 냉이 캐기
시골집에서 캔 냉이 우리의 무기력증을 구해 준 냉이 캐기 변영숙
 
엄마는 양주 대모시에 있는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으로 직행해서 호미부터 챙겼다.

"냉이 캘 때에는 호미가 뾰족해야 돼."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들고 밖으로 향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의 거침없는 행보였다. 순간 살짝 눈물이 맺혔다. 저렇게 신나 하는데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몹쓸 병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 갇혀 지내야 하는 엄마가 너무 짠했다.
  
"누가 벌써 한 축 해 갔네."

내 눈에는 냉이의 냉자도 보이지 않는데 엄마는 벌써 밭을 한눈에 다 둘러본 모양이다. 요즘은 시골이라고 빈 밭이라고 어디나 냉이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시골에 냉이가 지천이라는 말도 다 옛말이다. 농가 깊숙이까지 공장이 들어선 시골 풍경은 이미 낯설기 그지없다.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살던 아랫집 윗집은 높은 공장 담벼락에 가로막혔고, 얼굴도 모르는 낯선 외지 사람들이 휘젓고 다니고, 경운기 지나던 호젓한 시골길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냅다 달리는 화물차 차지가 되었다.

수백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던 돌담길은 공장 부지라며 아예 없애 버렸다. 공장에서 밤새 켜 놓은 가로등 불빛 때문에 콩이 자라지 않는다는 하소연도 심심찮게 있었다. 얼마 전에는 집 앞의 논을 다 갈아엎고 밭을 만들어 놓았다.

그 땅에 무엇이 들어설지 유심히 관찰 중이다. 할머니 집 마당에서 가을이면 누런 황금색 들판을 바라보며 마냥 좋아하던 시절도 모두 옛말이다. 원주민들이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등지는 현실이 우리 시골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누가 해 갔을까? 남의 밭에서 냉이 캐 가면 도둑질 아니야?"
"감자나 고구마처럼 주인이 심은 것이 아닌 것들은 훔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도 남의 밭에서 냉이 해 왔잖니?"


그러고 보니 우리도 예전에 남의 밭에 들어가서 냉이를 해 온 적이 있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 것 네 것 챙기려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힘들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길이 나의 사유지를 지난다며 수백 년 동안 있어 왔던 길을 하루 밤 사이에 막아버리는 세상에서는 참 '고리타분' 하게 말이다.

엄마는 바로 전투 모드로 돌입해서 냉이를 캐기 시작했다. "냉이라고 다 잔챙이라서 다듬으면 먹을 것도 없겠네" 하면서도 고개도 들지 않고 열심히 캤다. 간만에 엄마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시골에 오면 엄마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팔해지고 농사일이며 다른 일들도 척척박사였다. 거리낌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데도 여간해서는 오지 않으려고 했고, 심지어는 시골집에 오는 것이 싫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서 죽어라고 고생만 했는데 뭐가 좋겠니?"

엄마가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시시콜콜 말은 안 했지만 그 상황을 모를 바도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시골의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엄한 시부모 밑에서 대가족 건사하면서 살아야 했던 시절이 오죽 힘들었을까. 엄마보다 어린 고모 삼촌이 셋이나 있었다면 말 다한 것이 아닐까.

애잔한 엄마의 육신... 다시 찾은 활력
 
냉이 캐는 엄마  앉아서 냉이 캘 힘도 없는 엄마는 흙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냉이를 캤다.
냉이 캐는 엄마 앉아서 냉이 캘 힘도 없는 엄마는 흙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냉이를 캤다. 변영숙
 
엄마는 아예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매주 1, 2회씩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지 않으면 잘 걷지도 못하는 양반이 흙바닥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냉이를 하는 모습이 왜 이리 가련해 보이는지. 순간 엄마의 모습에서 흙장난을 하는 어린아이가 겹쳐 보였다.

젊은 시절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병든 내 엄마의 육신이 너무 애잔했다. 엄마에게도 분명 순진하고 생기발랄한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 꽃 같은 세월을 헐벗고 굶주리며 타인을 위한 노동으로 소진해 버린 내 엄마의 삶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 삶을 위로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나는 이따금씩 엄마의 발이 되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냉이도 엄마 눈에는 훤하게 보이나 보다. 엄마 바구니에는 내 것보다 훨씬 굵고 실한 냉이가 그득했다. 잠시 후 엄마는 우리 밭에 있는 냉이를 다 캐고 옆 집 할아버지 댁 비닐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는 힘들다면서도 이 밭 저 밭 다니면서 신바람 나게 냉이를 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나눈 이야기. 

"엄마 오늘 힘들지 않았어?"
"힘이 들지 왜 안 힘들어? 그래도 사람은 이렇게 가끔씩 바깥 바람도 쐬야 돼."
"다음 주에 또 갈까?"
"그래!"


엄마의 얼굴에서 간만에 살아 있는 사람의 '생기'가 묻어났다. 며칠 후 엄마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자르고 코팅도 하고 예쁘게 뽀글이 파마를 하고 들어왔다.
덧붙이는 글 작가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팔순의 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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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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