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홍길동전에 담긴 깊은 뜻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 26회] 당시 지배층 신료들이 기피했던 소설을, 국문(한글)으로 지은 이유

등록 2021.03.27 14:34수정 2021.03.27 14:34
1
원고료로 응원
 
a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전시된 홍길동전 ⓒ 김종길

 
조선조 사회에서는 사류(士類)들이 소설을 경시해 왔기 때문에 작품을 저작해 놓고도 이름 밝히기를 꺼려왔던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작자를 망실한 작품이 많은 오늘날 소설사 연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물론 작자들 가운데는 김시습(1435~1493)과 같이 제 금오신화라는 시를 지어 간접적으로 금오신화의 저작을 말한 바 있지만 여타의 작자들은 본인이 간접적으로도 밝힌 경우가 드물다. 교산도 홍길동전의 작자로 먼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으나 교산 자신이 직접 밝힌 바 없으므로 오늘날 홍길동전의 작자로 회의를 가지는 견해도 없지 않다. (주석 5)

허균이 부안에 유배되었을 때, 마흔 살 전후하여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이제 이론이 거의 없는 정설이 되고 있다. 사류들이 경시하고, 짓더라도 저자를 밝히지 않은 소설을 그는 왜 지었을까. 그것도 '아녀자들'이나 읽고 쓴다는 국문(한글)으로 썼을까.

홍전(洪傳)은 균배(筠輩)의 자서전이었을수록 더욱 귀중하다. 가진 포학과 천대를 다 하는 양반정치에 반기를 든 풍운아 홍길동의 성격이 전후의 모순없이 완전히 묘사되었으며 장회소설(章回小說)의 시조가 되었다는 점으로서 조선 소설사상 가장 거벽(巨擘)이라 하겠다. (주석 6)
 
a

손영학 作 홍길동전 목판 ⓒ (주)CPN문화재방송국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이만큼 짧은 문장에서 가치를 집약한 평가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홍전'은 홍길동전, '균배'는 허균을 일컫는다. '장회소설'을 사전의 풀이는 일관된 긴 이야기를 여러 회(回)로 잘라 서술한 소설, 매회 그 회의 내용을 간추려 제목을 붙였으며, 『수호전』, 『삼국지연의』, 『서유기』 등을 들었다.

한국인 치고 소설 홍길동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이해를 돕고자 『한국문예사전』이 요약한 '홍길동전'을 소개한다.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구소설. 1책, 인본. 한글소설의 효시로 중국소설 『수호전』에서 영향을 받아 임진왜란 후의 사회제도의 결함, 특히 적서(嫡庶)의 신분 차이의 타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그의 혁명사상을 작품화한 것이다. 서자로 태어나 천대를 받고 자란 주인공 길동이 도술을 익혀 활빈당(活貧黨)을 조직, 탐관오리와 토호들의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양민들을 돕다가 그 후 율도국(硉島國)에 정착하여 이상적인 왕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명선(李明善)장본으로 『김길동전(金吉童傳)』이 있었으나 이 작품도 내용은 같다. (주석 7)

허균은 어떠한 의도에서 당시 지배층 신료들이 기피했던 소설을, 그것도 국문(한글)으로 지었을까. 먼저 집필의 배경을 살펴본다.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은 바로 연산조에 실제했던 농민 저항의 지도자 홍길동을 취재해서 그의 사회개혁사상과 결부시켜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홍길동전』은 허균의 우리말 문학에 대한 관심과 현실개혁사상, 그리고 역사상 실재했던 민족영웅에 관한 관심과 구비문학적 전승이 함께 어우러져 이룩된 문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작자문제와 『수호지』 모방설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택당잡저(澤堂雜著)의 "균우작홍길동전, 이의수호(筠又作洪吉同傳, 以擬水滸)"라는 기록을 중시하고 그 의미를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지』에 견주었다'라고 해석한다면 그 논란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8)

 

<홍길동전> 표지.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홍길동전』을 역사현장으로 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마르크스주의 국문학자 김태준은 이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1) 계급타파 특히 적서차별의 폐지를 고조한 것.
(2) 향토거벌과 토호와 귀족을 질시하여 지방 수령의 불의지재(不義之財)를 몰수하며 빈민을 구제한 것.
(3) 중국 율도국에 들어가 왕이 된 것. (주석 9)


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자화상이다. 그의 소망과 이상이 담긴 로망이다.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ㆍ부패, 차별과 수탈, 나라의 자존심을 시대상황이라는 보호색으로 뒤짚어 쓰고 벌이는 허위의식을 벗기고, 율도국이라는 이상사회를 꿈꾸는 로망이었다.

그는 「북귀부(北歸賦)」란 시에서 자신의 심경을 담았다. 

 다시 거듭 말하리라.
 천지에 숙살 기운 가득하여
 화한 기운 막혔어라
 난새 공작 위새 꺾이어
 형극으로 도망가고
 올뺴미 뜻을 얻어
 대궐에서 요란하네
 향기 아니난다 난초 물리치고
 누린내 풀 향기롭다 말하며
 못생긴 얼굴 곱다 하고
 미인을 추하다 하누나
 슬기로운 사람은 움츠러들고
 어리석은 자가 득세를 하네. (주석 10)


주석
5> 차용주, 앞의 책, 202쪽. 
6> 김태준, 『조선소설사』, 87쪽, 학예사, 1939.
7> 『한국문예사전』, 649쪽, 어문각, 1992.(증설판)
8> 김영, 「중세 권위주의에 저항한 문인 교산 허균」, 『한국고전문학 작가론』, 324쪽, 소명출판, 1998.
9> 김태준, 앞의 책, 89쪽.
10> 이문규, 앞의 책, 16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동학에서 '구원의 길' 찾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5. 5 [단독] 김건희 이름 뺀 YTN 부장 "힘있는 쪽 표적 될 필요없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