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행과 불행은 순환한다

이것이 중국인이다 4

등록 2021.04.05 14:41수정 2021.05.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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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좋은 일이 생겨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이 생겨도 그다지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다. 공자는 '군자는 재앙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복이 와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천 년 동안 공자의 이런 가르침을 받고 살아 온 중국인들의 삶은 '군자'를 지향한다. 거기에다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무수한 전란의 풍파를 겪은 탓에 중국인들은 거의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이 된 것이다.

"삶을 보는 것이 죽음과 같고, 부(富)를 보는 것이 가난함과 같고, 사람을 보는 것이 돼지와 같고, 나를 보는 것이 남과 같다."

이것은 열자(列子)란 책에서 군자를 논한 부분인데, 이 정도면 거의 도사의 수준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말의 유학자 이색은 군자의 삶의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덕은 있으나 이름이 나지 않고, 이름은 났으나 지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군자는 근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덕이 그 지위에 맞지 않고 이름이 어쩌다가 실지보다 지나치게 나는 것은 군자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색이 말한 이러한 군자의 상은 그대로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중국인들이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게 된 것은 공자 이래로 유가적 삶을 살아 온 긴 세월이 쌓여서 퇴적층을 이루며 고스란히 한 자리에 쌓이게 되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사상은 군자뿐만 아니라 일개 필부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 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노인을 위로하자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 런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젊은 말을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인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 런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 런지."
그로부터 얼마 후, 오랑캐가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러 나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무사했다고 한다.
- 회남자(淮南子), 인생훈

이 이야기 속에는 세상만사가 변전무상(變轉無常)하고,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희로애락을 쉽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는 중국인의 대범한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한 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참을 수 없는 불운한 처지에 이유 없이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또 그러한 고통과 불운 속에서 예기치 못한 행운과 기쁨을 만날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 엄청난 행운과 성공을 거둔 자의 삶의 순간에 이미 불운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수도 있다.

받은 재앙이 도리어 복이 되는 전화위복

중국에는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인생만사 새옹지마'하면 꼭 따라 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다.

중국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던 전국시대 때 일이다. 여러 나라의 싸움을 말리는 합종책(合從策)으로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 6개 나라의 재상을 겸임했던 책사 소진(蘇秦)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功)으로 만들었다(因敗爲功)."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은혜를 갚은 산적들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큰 군주였다. 그는 이웃하고 있는 또 다른 진(晋)나라 혜공(惠公)에게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호의를 몇 차례나 베풀었다. 그는 혜공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군대를 후원해 주었고, 흉년이 든 해에는 식량을 빌려 주어 기근을 면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혜공은 신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목공의 진나라기 흉년이 들어 빌려간 식량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식량을 보내는 대신 군사를 일으켜 흉년에 시달리고 있는 목공의 진나라로 쳐들어왔다.
화가 난 목공은 군대를 이끌고 나가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두 나라의 군대가 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서로 상대방 임금을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목공은 완전히 포위를 당해서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목공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통탄을 했다. 

"아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산비탈에서 산적처럼 보이는 수백 명 사람들이 칼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그들은 포위해 있는 적군을 향해서 바람처럼 밀고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적군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기적처럼 탈출한 목공은 그들을 불러 크게 상을 주고 원하는 사람에겐 벼슬까지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저희들은 이미 상을 받은 지 오래입니다.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미 상을 받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과인은 그대들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러자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일제히 소리를 높여 외쳤다.
"저희들은 옛날 대왕의 말을 훔쳐서 잡아먹고 죽을죄를 지은 몸이었는데 대왕께서 처형은커녕 좋은 술까지 하사해 주신 적이 있는 바로 그 도둑들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목공은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냈다. 어느 날 밤 마구간의 말이 여러 마리가 없어진 일이 있어서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산속에서 산적들이 말을 잡아 고기를 먹고 있었다. 군대를 풀어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니 삼백 명이나 되었다. 모두들 사형을 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목공은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용서했다.

"군자는 짐승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법이다. 내가 들으니 좋은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을 상한다고 하니 저들에게 술을 내주도록 하라."

목공은 그들에게 모두 술을 나눠주어 마음껏 마시게 한 다음 돌려보내 주었다. 산적들은 그때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다가 두 나라가 싸운다는 소문을 듣고 은혜를 갚고자 달려 온 것인데 마침 목공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목숨을 걸고 구출해 냈던 것이다. 결국 목공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 의리 없는 혜공마저 생포하여 개선할 수 있었다.
  
중국인의 순환사상,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렇게 '순환(循環)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혜를 키워왔다. 운과 불운, 행과 불행은 순환한다고 봄으로서, 그들은 어떤 눈앞의 이해에도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새옹지마의 예에서 보았듯이 언제 어떻게 인생이 변화를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의 의지는 예측할 수 없다. 시련을 주는가 하며 영달을 주고, 또 영달을 주는가 하면 다시 시련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다 할 영웅호걸들도 여기에 휘말려서 곤혹스러워 한다. 그러나 군자는 역경에 부딪칠 때 달게 받아들이고 평온무사 할 때도 유사시를 대비한다. 그리하여 하늘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하늘이 관장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유사시를 대비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채근담은 가르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불행은 미리 자신이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것이 곧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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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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